키 187cm.
나는 키가 제법 큰 편에 속한다.
학창 시절부터 키가 크지는 않았다.
키 순으로 번호를 정하던 우리 학교는 내가 중3 때 40명 중 25번으로 기억한다.
그냥 고만고만한, 작지도 크지도 않은 학생이었다.
그런데 졸업식날 우리 반에서 내 키가 제일 컸다.
중3과 고1 약 2년 동안 나는 성장통에 시달렸다.
자다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깨어 난 일은 셀 수도 없다. 오죽하면 너무 아파서 다리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 혹은 "죽을 만큼 아파도 경험했으면 좋겠다."며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안다. 당시 나에게 성장통은 죽을 듯이 아픈 경험이었다. 매일 밤이 무서웠다.
당당하게 하프코스 마라톤을 신청했다. 아주 자신만만했다.
그때까지 최고 20km까지 달려 봤으니 하프마라톤 완주는 우습다 생각했다.
그렇게 2023년 10월 23일 대회를 한 달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하프마라톤을 신청했다.
대회는 11월 19일 부산마라톤
이상한 일이 생겼다. 대회 신청 전에 20km를 달린 경험이 있던 내가 갑자기 15km를 달리기도 벅찼다. 겨우겨우 10km를 뛰는 날이 계속되었다. 대회는 다가오는데 기록이 아니라 완주가 의심스러운 상황들이 일어났다.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다. 그냥 힘들었다. 몸속에 에너지가 금방 고갈되어 버리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대회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고, 조급한 마음에 스스로를 더 채찍질했다.
오늘 20km 완주를 실패하면 내일 도전했고 또 실패하면 다음날 도전했다.
결과는 이제 10km도 뛰기 힘든 날이 나오기도 했다.
"아 내가 마라톤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구나."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았다. 유튜브나 인스타를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그렇게 스스로 내린 진단은 "휴식"이었다.
'그래 눈 딱 감고 쉬어보자.'
3일을 쉬었다. 그리고 기록이 아니라 완주만 하자는 생각으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대회를 신청하던 순간 나의 목표는 1시간 40분 이내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급히 목표를 수정했다.
"2시간 안에만 들어오자."
실력이 늘지 않고 오히려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던 그 순간.
아마 내 몸은 성장을 위한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난 대회 당일 아침까지 완주만 하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결과는 1시간 44분.
생각보다 잘 뛰었다. 대회 기록이 당시 개인기록이 되었다.
발전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포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때로는 그저 아주 잠시 쉬었다가 가는 것도 필요하다. 아마도 그 휴식을 통해 내 몸이 혹은 내 기술이 성장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