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보운전 May 05. 2024

어린이집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면담을 한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의 집에서 모습을 많이 물어봤다.

"...."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아내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급히 떠올려 말씀드렸다.

"죄송해요. 아내가 왔으면 좋을 텐데 제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부끄럽기도 했다.


내가 어린 시절은 아빠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 오는 경우가 드물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려 노력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시대가 변했다.

요즘 아빠들은 엄마들만큼 아이에게 관심을 많이 갖는다.

솔직히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아빠 그래도 내가 아빠보다는 많이 참여하는 거 같아."


어린 시절 아빠는 나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원래 성격이 무뚝뚝한 편이라 표현을 안 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그저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뜬금없지만 문득 대학시절 어느 하루가 떠올랐다.

그날은 늦은 오전에 집에서 나가는 날이었다.

늦잠을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다.

아빠가 서있었다.

"뭐 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아빠에게 물었다.

"야 임마 남자가 빈지갑을 들고 다니냐."

한심 하다는듯한 눈빛과 말투로 내 지갑을 책상 위에 툭 던져 놓았다.

"돈이 없으니깐"

"남자는 빈 지갑 들고 다니는 거 아니야 임마."

아빠는 약간은 신경질적인 말을 던지며 방을 나갔다.


갑자기 들어와서 이상한 말만 하고 나가는 아빠 덕분에 잠에서 깼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지갑을 챙기며 생각했다.

'돈이 없으니깐 빈지갑이지, 이상한 소리를 하고 가네.'

무심코 지갑을 펼쳤다.

3만 원이 들어있었다.


우리 아빠는 늘 이런 식이다.

좀 다정하게 말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툭 던지는 말을 한다.

정형적인 '오다 주웠다.'식 화법이다.


아빠의 낯간지러워하지 못하는 표현 방식이 싫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런 말조차 들을 수 없어서 오히려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빠보다는 한 단계라도 발전된 아빠가 되려고 한다.

"아빠! 나는 아주 조금일지 모르겠지만, 아빠보다는 다정한 아빠가 될게"


내가 그랬듯이,

무뚝뚝한 아빠 밑에서 자란 아들은 아빠에게 정감 있는 표현을 하기 어렵다.

"아빠는 아들에게 애정표현을 못 들었지만, 나는 들을 거야 꼭!"


사실 고백하자면,

어린이집에서 면담을 마치고 아들을 안고 나오면서 아빠를 이해했다.

"왜 아빠가 안 왔는지 이해가 된다."

안 온 것인지 못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빠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전 06화 "나가요"병에 걸린 아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