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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인사] 3호선 대화행에서

2025.2.21. 금

by 이음

안녕하십니까. 여지없이 이음입니다.

아직 감기한테 미움받고 계시죠? 저는 사랑받나 봅니다. 너무 사랑받아 평소보다 2-3도 더 후끈거리고 후들거리고 그렇습니다. 아픈 건 제가 대신 아플 테니 아프지 마세요


저는 아직 무교입니다. 다만 절의 분위기나 향이 좋아 부모님을 졸라 자주 가곤 했습니다.

최근에도 같이 드라이브 겸 사찰 한 군데를 다녀오면서 든 생각입니다. 주말에 간 사찰이라 곁을 스치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의 향도 뒤따라 붙더군요. 분명 섬유유연제나 세제향은 한정되어 있는데 왜 이리 향이 다를까 싶어서 어머님께 여쭤보니 대수롭지 않은 답이 돌아왔습니다. 같은 집에 살며 같은 걸 먹고 접하니까 그런 것이라 고요. 살다 보니 내가 못 먹는 건 자주 접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많더라 아마 자주 먹어버릇했으면 지금 못 먹는 것들도 다 먹었을 거라는 말도 함께요.

저는 향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근데 향에만 민감했나 봅니다. 향의 형성에는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오래도록 같이 쌓여 풍기는 것인데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도 문뜩 깨닫곤 합니다. 겉에만 신경 쓰던 제 자신을 돌아보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습니다. 어디 절이던 고양이는 참 많더군요. 누군가 고양이는 부처다라고 그랬는데 여기서 좀 의문이 듭니다. 고양이는 잡식이지만 가끔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습니다. 그럼 살생을 하는 고양이는 아직 부처일까요? 아님 자연을 이루는 동물들이 단지 섭리를 따라 순환하는 부처일까요? 씰룩거리는 점박이 떼껄룩 엉덩이를 보며 생각을 마쳤습니다.


시나 소설들을 보면 겨울의 산에는 꼭 나무들이 등장합니다. 앙상하고 말라서 화자의 외로움을 대신 품고요.

이건 제 생각 입니다만 저는 소나무가 더 외로워 보입니다. 앙상한 나무들 곁에는 항상 같은 처지의 나무들이 있습니다. 힘든 처지를 서로 의지하는 전우 같이요. 근데 그 사이 홀로 푸른빛을 발하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바람을 맞아도 꿋꿋이 버티는 그런 소나무요. 아직 바람이 찰 텐데요. 본인들을 더 안쪽으로 여미며 바람을 피하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날아갈까 나뭇잎들을 꽉 붙잡고 바람을 전부 견디는 소나무요. 올 해는 봄이 조금 더 일찍 오길 바라며 저 소나무가 외롭지 않길 기도했습니다.


3호선 전철을 탔습니다. 대화행입니다. 옥수 역으로 가는 길. 한강이 보입니다. 넓고 반짝거리고 많습니다. 날이 좋으면 남산타워도 보이는 듯합니다. 저는 서울 사람이 아니라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래서 더 좋습니다. 언뜻언뜻 보이는 새로운 아파트들, 다리들, 도로 위 자동차들까지. 자주보지 않아 다행인 풍경들이 전철 역사 사이를 달리는 짧은 시간 동안 멀어져 갑니다. 자주보지 못해 새롭고 아쉽고 아련합니다.


생각보다 되게 재미없게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제 친구들이 인정하는 노잼인간이거든요. 제 인생에서 아무것도 없는 안정기인 지금은 편지에 담을게 더 없습니다. 그러다가 다녀온 사찰에서 많은 시선을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놓치고만 있던 것도 잡아보았고 새로운 시선도 만끽했습니다. 삶이 바쁘시거나 힘드시더라도 잠깐이나마 시간을 내셔서 주변 산책을 다녀오시길 권해드리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어떨 때는 나를 가꿔보세요. 감기 걸린...


... 이음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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