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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24. 2021

저 하늘 별을 보며 대화한다면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남자들과 다르게 여자들은 대화를 많이 한다. 같은 상황, 같은 말도 몇 시간이고 얘기할 수 있는 여자들, 나의 소녀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가 지고 까마득한 어둠이 내려앉곤 했다. 그렇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보통 전화로 아쉬움을 풀곤 하는데 나에게 밤은 친구들과 소통이 단절되는 시간이었다. 가로등 없는 놀이터에서 대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대화할 수 있는 장소는 동네의 맥도날드였다. 하지만 통금이 있는 학생이었고 학생들이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가고 있으면 안 좋게 보는 시선들 때문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면 전화로 수다 떨며 새벽녘 감성에 기대어 떠들며 잠드는 친구사이. 하지만 난 전화통화를 길게 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받아쓰기하는 심정으로 듣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에 30분 이상 길게 통화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릴 땐, 내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배려해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와 오해가 있기도 했다. '나는 너랑 더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왜 넌 전화를 끊으려고 하냐?'라는 이야기, 내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친구들은 청각장애인 치고는 잘 듣는 친구로 알았던 이유도 있었다. 


내가 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사춘기의 친구들이 모두 겪는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나라는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가는 어른과 달리 그러한 자아형성이 시작되는 사춘기에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친구에게 편하게 이야기하긴 어려웠을 것이다.(그래도 어린 시절 장애가 있음에도 엇나가지 않고 나에 대한 자아를 잘 찾아간 나에게 스스로 칭찬을 해본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문자로 새벽녘까지 이야기 나누곤 했지만 나는 모르는 그 새벽 감성, 새벽녘 라디오 DJ가 들려주는 센티한 이야기들, 친한 친구와 밤새 전화로 나누는 수다가 있었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모르고 지나갔다면 괜찮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조금씩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친한 친구가 이야기 해준 내용이 기억이 남는다. 그 친구는 내가 가장 친한 친구라 여겨서 나에게 먼저 해주고 싶던 얘기들이 있었다고 한다. 남자 친구와의 연애 이야기, 가족과 다툰 후 속상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 낮에는 얘기하기 조금 어려운 이야기들도 새벽 감성에 취해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한 '새벽의 이야기들을 먼저 나누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고, 그래도 힘들 때 가장 먼저 달려와주고 속 깊게 대화를 들어주던 친구는 너였다'라고 해줬다. 성인이 되어 각지로 뿔뿔이 흩어진 후에도 친한 친구들에게 어려움이 있거나 내가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늘 먼저 달려갔다. 전화로 길게 얘기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난 늘 전화로 내가 직접 가겠다고 얘기했다. 전화로 하는 것과는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친구에게 직접 달려갔을 때 친구는 늘 위로받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나도 친구들이 늘 달려와주고 챙겨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신은 나에게서 청력은 앗아갔지만 누구보다도 먼저 행동하게 하고 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주셨던 거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녁, 친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민아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잘 있는 거지?'라는 그 말. 특별한 내용은 없고 전화로 길게 속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은 당연히 언니나 나나 잘 알고 있다. 짧은 시간 길지 않은 통화, 그럼에도 그런 진심 어린 마음이 잘 와 닿는다. 사람들은 늘 안 좋은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면 결핍,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과 새벽녘에 전화하지 못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새벽 감성을 느낄 수 없었던 것들도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핍이 있었기에 늘 먼저 달려갔고
얼굴을 마주 보고 소통하는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못 누린 것들을 결핍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다른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왔던 학창 시절이라 생각한다.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단 함께했던 진심이 담긴 소중한 추억들에 더욱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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