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이 Jun 10. 2021

안 들려서 그래?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


남편이 늘 나에게 듣는 잔소리가 있다. ‘길거리에서 걸으면서 핸드폰 하지 마’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남편은 늘 웃곤 한다. ‘우리 아빠랑 똑같은 말 하네’ 라며 말하는 남편, 사실 남편만이 듣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요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도 핸드폰을 보면서 다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공공장소를 이용할 때에도 핸드폰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스마트폰이 생기고 난 이후로 핸드폰이 단순히 연락의 수단이 아닌 재미를 줄 수 있는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지곤 한다. 그래도 꼭 지키는 원칙이 한 가지 있는데 길거리에서 걸으면서 핸드폰을 하지 않고, 영상을 보면서 걷는다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이 생긴 이유는 어릴 때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아빠가 핸드폰을 사주신 덕에 친구들과 연락하고 길을 걸으면서 소소한 핸드폰 게임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처럼 학원 끝나고 게임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아저씨가 나에게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놀래서 뒤를 돌아보니 그 아저씨가 ‘빵빵 거리는 소리도 못 듣고 왜 안 비키냐’라고 나에게 심한 욕을 했었다. 그중에서도 한 가지 말이 너무 와닿았다. 


‘너 귀머거리야?’ 

내가 잘 안 들리는 것은 맞지만 그렇게 상처를 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춘기여서 마냥 예민하던 그 시절, 내가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상하게 그 단어가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길거리에서 걸으면서 핸드폰을 하진 않았다. 그 아저씨의 말이 심하긴 했지만 길거리에서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핸드폰을 하며 걸어간 것은 분명 내 잘못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잘 살고 있던 나에게 코로나라는 변수가 다가왔다. 마스크를 쓰면서부터 아무래도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조금은 어려워지기도 했다. 특히 사람이 많은 카페나 백화점 등 소음이 있는 곳에서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다. 


얼마 전 카페에서 구매한 텀블러때문에 점원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적이 있다. 주변의 음악도 시끄러웠고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지다 보니 점원의 실수 때문에 소통이 쉽지는 않았고 상황이 정리되지 않던 와중이었다. 옆에 있던 남편은 뒤늦게 와서 정확한 상황을 몰랐기에 그냥 지켜보던 중이었는데, 그 와중에 점원이 남편에게 설명하길 ‘고객님이 잘못 들어서 지금 이러한 상황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상황에서 음악도 갑자기 조용해졌고 나는 그 말을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금은 욱했고, 점원에게 ‘내가 뭘 못 들어서 그래요? 아까는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어요?’ 라며 물었다. 결국 나중에 확인해보니 점원의 기억이 잘못되어 오해가 생겼었던 것이다. 사실 누구의 기억 잘못될 수 있고 기억이 잘못된 것에 화날 수는 없지만 단순히 그 상황을 내가 못 들어서?라는 이유로 되돌아간다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고 말았다. 일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오면서 ‘나중에 또 이런 상황이 오면 지금처럼 똑같은 행동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결국 어릴 적 사춘기의 소녀는 못 들어서 남에게 피해 준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삶의 태도를 바꾸고자 했는데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안 들린다는 사실이 쉽게 이유가 되는 게 슬펐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 [출처:연합뉴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일이건, 어떤 상황이건 일어난다. 사실 내가 겪었던 두 가지 일 모두 안 들려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핸드폰에 집중하면서 소리를 듣지 못했던 나의 부주의였고, 카페 점원과의 이야기는 서로 간 기억의 차이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청각장애인이어서, 안 들려서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고정관념이 정말 무서운 법이며, 보통의 사람들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일어난다. 


코로나 19 상황이 되면서 나와 같은 청각장애인들이 소통에 이전보다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단순히 안 들리는 것이 이유가 아닌 다양한 많은 이면들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건 청각장애인들이 소통에 위축되지 않고 의견을 피력하고
이를 듣는 많은 비장애인들도 상황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
이전 08화 저 하늘 별을 보며 대화한다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