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수! 허언수!"
인도에서 처음 도착한 곳은 바라나시. 시끄러운 경적소리, 많은 사람들, 그리고 청결하지 못한 거리까지 인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들을 내가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산토스가 곁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토스를 처음 만나던 그 날은,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싶어 무작정 여러 가게들을 전전하던 중이었다. 연이은 네 번의 거절, 또 다른 레스토랑을 알아보려던 찰나. 길거리에서 잡화를 팔고 있던 한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설픈 단어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을 때쯤, 내 이야기를 듣던 그는 내 손을 잡고 골목 어디론가 들어가더니 이렇게 외쳤다. “산토스! 이 친구 물건이야. 잘 알려줘요!” 이내 그는 사라졌고, 그곳이 산토스의 가게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산토스 와의 인연. 인도의 레스토랑 주방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커리 때문이었다.
요리를 전공했지만 인도의 대표 요리인 커리는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커리의 원조, 인도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을 미치도록 배우고 싶었다. (한 달이 다 돼가도록 레시피를 알려주지 않았고, 집요하게 파고든 끝에 마침내 산토스의 커리 레시피를 얻었다. 오예!) 첫 만남부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말없이 짜이(인도 홍차)를 내밀던 그. 문득 난 주방이 궁금해졌다.
슬쩍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산토스는 젠틀하게 나를 막아서더니 이렇게 말했다."첫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요리를 보여줄게.”베지터블 코프타 한 개, 마살라 커리 한 개, 쵸우면 두 개.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첫 주문이 들어왔고 나와 산토스는 주방으로 향했다. 칼 군무를 연상시키듯 딱딱 떨어지는 그의 동작에 눈과 마음이 매료되는 건 순간이었다.
한 달간의 여정, 눈물의 작별인사 후 델리로 향하는 길에 든 생각, “타지마할에 가기보다, 바라나시 221001번지 죠띠에 갇혀있길 참 잘했어”내 이름은 ‘현수’ 라고 몇 번을 말해도 헌수라고 부르던 산토스. 인도에 3억명이 넘는 신들 중 가장 유명한 신이 헌수여서 헌수라고 불렀다나 뭐라나. 인도랑은 너무나 다른 이 곳, 서울이지만 이따금 유난히도 좁은 골목길을 지나게 될 때면 어디선가 들릴 것만 같은 목소리가 있다. "헌수! 허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