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니 토고치?”
에르데네트에서 울란바토르행 열차에 몸을 실었을 때 문득 여행을 떠나기 전 몇 번이고 봤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리고 비포선라이즈.
두 영화는 시작과 끝을 '기차'에 두고 있다. "나도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지만 역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기차는 쉴 새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주황 점퍼를 입은 청년이 내가 쓴 모자에 관심 있어하며 처음 말을 건넸다. (사실 나도 그 청년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고맙게도 먼저 걸어주었다.) 몽골에서 두 달 넘게 살았기에 몇몇 문장은 기억해두고 있던 터라 내 좌석 앞의 청년에게 짧은 문장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치니 *토고치?" (직역하면 "너 요리사지?") *몽골어로 요리사는 '토고치'라고 한다.
그는 배시시 웃더니 똑같은 질문을 했다. "치니 토고치?" 우리 둘은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며 손을 맞잡고 어깨를 툭 쳤다. 그 표현만으로 마치 요리하는 사람의 애환을 다 공유하는 듯했다. "나는 새뜨르 (шагдар)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요?" 그는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대뜸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먹어보라고 했다.
새뜨르가 준 음식은 몽골식 전통 볶음국수 초이왕이었다. 몽골여행 중 정말 많은 초이왕을 먹어봤지만, 이 초이왕은 비주얼이 영 아니었다. 불어 터진 면에 채소도 별로 없고, 심지어 고기도 없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한 젓가락 입에 넣는 순간, 웬걸. 너무나 맛있는 게 아닌가. 사실 초이왕을 조리하는 데는 몇 가지 조미료가 들어가는데 이 초이왕은 본연의 맛을 잘 지킨 것 같았다. 여태껏 먹어본 초이왕 중에 가장 심플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날의 초이왕.
몽골여행 두 달 끝에야 알았다. 때로는 열 마디의 대화보다 국수 한 젓가락의 맛이 더 강렬할 때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