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해부장면을 구경하기도 했었다. 멈춰버린 심장은 그다지 붉지 않다.
학창 시절의 일이다.
언니는 가끔 밀린 숙제를 집으로 가져와서 했다.
커다란 들통에 온갖 생명체를 끓여서 뼈를 발라내는 것은
아무 데서나 허락되는 일이 아니다.
포르말린에 절여진 형체를 알 수 없는 잿빛 물체를 가져오기도 했다.
주로 학교 공터에서 하기도 했지만,
같이 먹자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 귀찮았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종류의 일이기도 했다.
나는 식탁에 앉아 순대를 먹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서
불투명한 하얀색으로 변해버린 뼈들을 건져 올리는 언니를 구경했다.
"야, 최악이 뭔지 알아? 카데바 해체하고 순댓국 먹는 거야."
"그게 뭐 어때서?"
"내가 먹으러 가자니까 다들 경악하더라.
그런데 넌 옆에서 먹고 있어."
난 대답 대신 속으로 생각했다.
"죽음은 죽음이지, 뭘."
진행보다는 종료가 더 낫다.
그래서일까 나는 선명한 것이 좋았다.
붉은 심장은 칼에 베이고,
그 상처는 눌러도
울컥울컥
피가 배어 나온다.
실제로 심장은 그리 붉지도 않다.
그리고 울컥거리지도 않는다.
차라리 난 웃고 싶었다.
그에게 이별을 몇 번 고했다.
그가 슬픈 건 싫었다.
그러나 내 일상이 무너지고
심장에 자잘한 상처들이 생겨나고
울컥임이 쌓여 가는 것을
계속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 질문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답은 듣지 못했다.
나중에 해달라고 했을 뿐.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침묵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고백 좋아한다.
고백으로 장난치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별은 좋아하지 않지만
장난 같은 이별을 건네고 싶었다.
그가 슬프지 않도록.
그리고,
헤어짐은 그렇게 다시 한번 더 만난 뒤로 미뤄졌다.
이별의 통보
그 이후에 그가 날 생각하면
"풉"하고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마지막 모습이
좀 웃기고 망가진 모습이면 어떤가.
그가 쉽게 넘어가길 바랐다.
"별 일 아니었어."라며.
잿빛 심장을 가진 채,
그의 붉은 심장을 토닥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블랙 코미디가 아니고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