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코너의 그 남자 017

꽤 오래 잘도 굴러갔다. 망가지기 전까지.

by stephanette

심장 모양의 소품을 모았던 적이 있다.

붉은색의 하트 모형,

크리스털 하트 무늬의 콤팩트,

진주로 장식된 핑크색의 하트 펜던트,

레이저로 전사되어 있는 아크릴 하트 문진.

심장을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난 그것들을 늘 지니고 다녔다.


처음 남자를 만나고

십수 년 넘게 아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별 이후의 그 슬픔과 미련의 혼합물 덩어리는

심장이 있던 자리를 대체했다.


다시는 그런 지경에

나를 처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오든

누가 가든

시작되든

끝나든

난 늘 아무런 변화 없는 삶을 살았다.


어째서 그렇게 손쉬웠냐고 한다면,

난 심장이 없었으니까.


지나고 생각하면

나는 사랑 대신

책임감이나 인내심 같은 걸 그 자리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그리고 일로 도망쳤다.


꽤 오래 잘도 굴러갔다.

망가지기 전까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절대 다시는 가지 않겠다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없어져버린 심장을 잘도 갖고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나를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다.


심장의 대체물을

더 이상 지니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마트 라면 코너에서

그를 마주치고

보라색 라면 봉지를 건네받았을 때부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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