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법
올 한 해 동안 나의 일상을 관통했던 핵심 키워드는 ‘감정’이었다. 이성이라는 자원을 주로 사용해 오던 T형 인간에게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늘 어색한 법.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이성 말고 나머지 반쪽도 제대로 잘 사용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즈음하여 EI(Emotional Intelligence) 코칭이라는 과목을 들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감정이라는 것을 일상 속에서 자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단계가 필요했다. 그 첫 번째가 그 감정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인데, 예민한 관찰력을 자신하던 터라 어렵지 않았다. 물론 섬세한 감정 단어로 시작하는 것은 어려웠던 터라 모든 상황을 퉁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느껴지는 ‘불편함’에서부터 시작해 보았다.
특정 상황에서 느껴지는 불편함(편치 않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것을 색깔에 비유하면 어떤 색깔인지, 그것을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얼마나 큰 것인지, 손으로 만진다면 어떤 질감인지 등 구체화할 수 있는 다양한 질문들을 던져 보았다. 그러자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어느새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이 ‘불편한 마음’을 신호로 삼자 연구 데이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대학생 고객과 코칭 대화를 나눴다. 보통은 대화가 끝나고 나면 아쉬움은 남지만 금방 잊혔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간이 지나도 불편한 감정이 떠나지 않았고, 계속 찜찜함이 남았다. 나는 불편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하나하나 해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을 회피한 후 찾아오는 찜찜함이었다. 고객이 가져온 대화의 주제가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주제로 느껴지자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머리를 어지럽혔다.
‘코칭 대화를 잘 이어나가지 못해서 나의 무능이 드러나지 않을까?’
‘내가 질문을 더 하면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정보를 알게 되지는 않을까?’
‘나도 모르게 에고가 작동해서 고객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라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고, 도망치듯 서둘러 코칭을 마무리했다.
불편한 마음을 뜯어보자 그 이면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보였다. 그 마음을 알아주자 어느 누구라도 그런 주제를 만났다면 나처럼 당황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거라고 수용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서 용기 있게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봤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고객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 건지 차례로 물어봤다. 나는 나(셀프)와의 대화를 통해서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더 나은 행동(말)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2회 차 코칭 때 1회 차에서 내가 느꼈던 솔직한 감정을 고객과 나눴다. 내가 솔직해지자 고객 또한 마음을 여는 것이 느껴졌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용기로 바뀌었고, 고객을 직면시킬 수 있게 해 주었다. 고객은 조금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깊은 성찰을 이어 나갔다. 고객이 느끼는 감정이 옳은 것처럼 내가 느끼는 감정도 옳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그것을 자원으로 삼았을 때 고객을 직면시킬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자원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인식하고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상황을 다룰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회피 기제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다운 편안함을 가질 때 고객을 직면시키고 더 깊은 성찰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비단 코치와 고객과의 관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불편한 마음’이 찾아올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그 감정과 이면의 욕구를 알아차리고 수용해 줄 때 우리는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그러나 때로는 부정적이고 치명적인 반응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한 공간에서 더 나은 옵션을 생각해 내고 선택할 수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나요?
그것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 이면에는 어떤 욕구가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