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때.
수많은 마지막, 그리고 또 다른 시작이 교차하는 때.
이 맘 때만 되면 몇 해 전 우리 회사 대표님 퇴임식이 떠오른다.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유종의 미’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렸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대표님의 퇴임식에서 나는 말로만 들었던 "유종의 미"를 직접 보았다. 한 해가 저물 무렵 늘 마음속에 새겼던 말, 그 말은 단순히 찰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과정 속에 녹아 있다. 우리가 어떤 마지막을 볼 때 단순히 그 마지막을 보지 않고 그 시작과 과정과 끝을 함께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퇴임식은 정말 아름다웠다. 당신조차도 몰랐을 정도로 사소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때로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추억을 건져 올렸다. 입사 최종 면접에서 처음으로 대표님을 뵈었다. 잔뜩 긴장하고 대표실에 들어섰는데, 검증을 위한 질문 대신에 회사 소개와 나아갈 방향을 브리핑해 주셨다. 어찌나 소탈하시었는지, 긴장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런 대표님이 있는 곳이라면 함께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을 굳혔다.
입사 후에는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대표님 책상의 책 덕분에 존경하던 교수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되는 행운도 생겼다. 정말 드라마틱했다고 기억된다. 각자의 소중한 추억을 담은 영상 속에서 그분은 다시 빛나는 모습이었다. 켜켜이 쌓인 추억이 영상 속에서, 각자의 기억 속에서 흐르고, 울컥해서 목이 메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분, 흐뭇하게 추억하는 분, 폭풍 눈물을 흘리는 분들. 모두 한마음으로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냈다.
그래도 전날 마음을 추스른 것이 약효가 있었다. 잘 참았고 무사히 사회자로 책임을 다했다. 끝나고 나니 이런 의미 있는 자리에 있었다는 뿌듯함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시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대표님은 후배들에게 남기는 주옥같은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 말씀을 온전히 기억하는 이유는 공중에 부유하는 그냥 좋은 말이 아니라 평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1. 사람은 차가워지고 굳어지면 생명을 잃게 된다. 따뜻해져 한다. 먼저 스스로에게 따뜻해야 하고 동료, 조직, 사회, 자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따뜻해야 한다.
2. 굳어지면 안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과거에 고착되어 굳어진 것들은 생명력을 잃는다.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쳐야 한다. 책으로 배우고 동료로부터 배우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배워라.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은 온다. 그 역경을 이겨내면 거꾸로 경력이 된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밀어내라. 그것이 문이라면 열면 되고, 그것이 벽이라면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그도 아니면 담쟁이처럼 타고 올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