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 산문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펼치고
나의 하나뿐인 조카, 팔공아.
아직 엄마 뱃속에 있는 너를 이렇게 불러도 될까. 몇 번의 아픔 끝에 찾아온 너를 보며 조용히 감사했지. 슬픔의 끝이든 기쁨의 앞이든 우리는 소란스럽지 않았어. 밖이 왜 이렇게 고요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말이야. 발자국 없이 호수 위를 걷는 가족도 있다고. 잔잔하고도 깊게 너를 기다리는 일 또한 다를 리 없다고. 나는 말이야. 가능하다면, 말보다 뜨거운 침묵으로 알려주고 싶어.
하나뿐이라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하잖아.
유일함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는 것.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할 건 사랑과 소중함은 다르지 않다는 거야. 안에서 밖으로 선명하게 펼쳐지는 무언가. 그 물기 어린 펄떡이는 처연한 지독한 밝은……. 마음속에 굴러다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어. 그중엔 티끌 없는 맑음도 있을 거야. 어쩌면 너에게 이미 가닿았을지 모를 명랑함. 그래, 오늘 나는 명랑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
세상의 많은 일들이 소리 소문 없이 일어났다 사라져. 그 사이가 감쪽같아서 네가 하루가 다르게 큰다는 걸 잊어버릴 때가 있어. 한때 나의 몸에도 내 것이 아닌 다른 심장이 뛰었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날들도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어. 지금이 아니고서야 다. 다 무용한 희망과 불행일 뿐인데, 우리는 이미 지나갔거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사활을 걸어. 팔공아. 여기는 참 중요한 곳이야. 두 발을 잘 디뎌야 해. 이왕이면 단단하게.
글을 어떻게 썼더라. 몸 안을 떠도는 무수한 단어를 보다가, 한 문단을 쓰는 데 며칠이 걸렸어. 익숙했어. 좋아하는 일이 정말 좋아서 하는지 모를 때가 있거든. 아무리 불투명한들 셀 수도 없이 마주하면 투명해질 때가 있거든. 어둠도 반복되면 더 이상 어둡지 않은 거야. 그런데 요즘은 말이야. 이게 다 처음인 일이라 걷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휘청휘청해.
팔공아, 너희 엄마에게 암이 있대.
어쩜 네가 제일 먼저 알았을까. 어른은 하루에 약 5000개의 암세포가 생겼다가 사라진대. 그런데 말이야. 이건 사라지지 않는 암인 거야. 수술과 치료를 해야 해. 그보다 잘 크고 있는 너를 지키는 게 우선이래. 대형 병원들을 다닌 결과,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지.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아는 일이 얼마나 먹먹한지. 검사에도 제한이 있어서, 당장은 한 군데 전이된 것만 확인할 수 있었어.
너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던 길엔 말이야. 삶은 참 모르는 일이구나 싶더라. 가능한 친절해야겠다고 다짐했어. 내가 나에게. 또 가까운 타인에게.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믿으면, 그 자체로 오묘한 틈이 생기거든. 있는 그대로의 일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기도 해. 나는 쓰려던 것들을 미뤄두고, 이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만 했어. 쓰고 싶지 않다. 숨기고 싶다. 숨고 싶다. 나는 그렇게 책상 앞에 앉았다가 어쩔 줄 모르는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거야. 쓸 수 없는 거야. 이대로라면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할 나를 인정해야만 했어.
책상 위엔 스무 권 남짓한 책이 있었어. 그중 포장을 뜯지도 않은 한 산문집에 눈길이 갔지.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 싶을 땐 눈이 온다>를 그제야 펼쳤어. 팔월의 한여름, 순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시인은 핸들을 쥐고 엉엉 울었대. '정말 말 그대로 엉엉 어린 아가들처럼.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어떻게 이래요.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사랑하는데 어떡해요.' 혼자서 중얼거렸대.
아이처럼 운다는 게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 줄 아니. 아무도 없는 숲 앞에서, 내 슬픔이 아닌 나를 감싼 주변의 사랑을 보기까지. 숲이 선명하게 일렁거리다 세상이 무채無彩로 펼쳐지고 있음을 알기까지. 우리는 거대한 슬픔 앞에서 그제야 너무도 사랑했음을 깨닫는 그렇고 그런 부류들인 걸. 팔공아, 나도 그랬어. 그 소식이 달려온 날, 사실은 내가 너의 엄마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거든.
"처음 김민정 시인을 만났던 날 그는 물끄러미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명재씨는 무채색으로 글을 써보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 말이 귀한 씨앗이 되어 무채, 라는 말이 내 안에서 뿌리를 뻗었다. /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상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 늘어난 속옷처럼 얼핏 보면 남루하지만 다시 보면 우아한 우리의 부피. 매일 산책하는 강변의 기나긴 길과 일렁대는 강물과 버드나무 줄기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그런 아름다운 걸 '무채'라고 퉁쳐서 불러보았다. 배앓이를 하듯 자꾸 보고 싶을 때 무채 무채 말하다보면 좀 나아졌다. 죽은 개들이, 인자했던 할머니의 손 끝이, 그렇게 건너온 저쪽, 너머의 존재와 말들이, 너무 귀하게 느껴져서 쥐고 싶었다."
무심히 읽어 내려가다가 눈앞이 흐려졌어. 후드득 눈물이 쏟아졌어. 곁에 있던 남편이 난데없이 우는 나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 슬퍼서 그래. 슬퍼서……. 말 끝을 흐리고는 서두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 내 안에서 지금 뿌리를 뻗는 말은 무엇일까. 팔공아, 나는 그게 명랑함이라고 생각해. 슬프면서도 슬프지 않은 것. 두려우면서도 두렵지 않은 것. 무서우면서도 무섭지 않은 것. 그 둘 사이의 균열을 친절하게 바라보는 힘. 그 힘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 줄 거라고 믿어. 어떤 균열은 곧 길이 되거든. 아무리 연약한 명랑함이라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 그건 언젠가 그냥 명랑함이 되기도 해. 너는 정말 특별한 존재라고. 너희 엄마 또한 그렇다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때까지 말이야. 명랑 명랑 연약한 명랑함을 어루만지다 보면 분명 나아지는 것도 있을 거야. 팔공아, 네가 잘 들어줄래. 가능하다면, 말보다 뜨거운 침묵으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