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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늘 Nov 21. 2024

사과를 잘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이른 새벽, 다 지나간 하루를 돌아본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아이 둘 다 원에서 행사가 있는 날. 늦지 않게 데려다준 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러 갔다. 목적지까지는 차로도 버스로도 지하철로도 한 시간 십분 남짓. 강남 일대의 복잡함이 싫어서 운전 대신 지하철을 택했건만 웬걸 태업을 시작한 바람에 배차 간격이 길었다. 이십 분쯤 기다렸나. 들어온 중앙선을 타고 가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할아버지 두 분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있던 할아버지들이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다. 미야베 미유키 장편소설 <모방범 1>을 읽는 참이었다. 문장을 따라가다 말고 눈 없는 시선이 온통 그쪽으로 쏠렸다. 전 같았으면 궁금해서라도 쳐다봤을 텐데. 저 할아버지들 주머니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드는 게 과연 정상인가. 공포나 두려움은 또 하나의 연대다. 얼어붙은 분위기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챈 순간,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호기심은 안전함을 기반으로 발동한다는 것. 이미 늦었는데. 내릴까. 다음 걸 타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한 할아버지가 자리를 떴다. 소란은 금세 조용해졌다. 


새로 배우는 일은 완전히 모르는 분야다.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잘하고 싶은 나는, 빨리 배우고 싶은 나는, 단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예민해진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책임감이 막중한 것도 사실. 혼자 종종걸음을 치며 언제쯤 이런 마음이 가라앉을지 가늠한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 하원이 평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늦어졌다. 부랴부랴 윤부터 하원시키고, 수를 데리러 갔더니 아이는 혼자 선생님과 놀고 있었다. 그런 적은 처음이었다. 수는 엄마를 나무라지 않았다. 엄마가 하는 일이 많아서 앞으로 바빠질 거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수의 말을 대신 전했다. 깜깜한 하늘을 가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침에 어지르고 나간 그대로다. 그게 또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애 먼 남편에게 화살이 돌아갔다. 글 쓰고 일하고 평일에 애 둘 혼자 챙기는 거. 남편도 하루종일 일했다는 거. 결국 이 삶도 나의 선택이라는 거. 다 알면서도 '애는 나 혼자 키우는 것 같네' 그런 말로 남편의 속을 긁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혼자라면 씻기는커녕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드러누웠겠지만 나는 내가 자기 위해서라도 아이들부터 챙겨야 했다. 


잠들기 전, 윤의 이를 닦아주려는데 아이는 오려고 하질 않았다. 방 정리 한다면서, 정작 수가 장난감이란 장난감은 다 제자리에 갖다 두고 있었다. 어제 똑같은 이유로 한바탕 했으니 오늘은 좀 참아야지. 그러나 싫다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에게 순식간에 부글부글 끓었다. 이 닦자. 싫어. 진짜 안 닦을 거야? 응. 엄마 여러 번 물어봤어. 진짜로 안 해? 응. 대화는 산뜻하게 마무리하고선 언니만 닦아주니 울기 시작하는 윤. 화는 그때부터 보란 듯이 폭발했다. 아이는 안다. 엄마의 눈빛이 서늘해지는 것을. 그제야 닦아달라고 떼써봤자 내 감정도 쉽사리 가라앉질 않는다. 칫솔을 꺼내 스스로 닦으라는 말을 남긴 뒤 얼마나 지났을까. 윤은 결국 혼자 칫솔질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늘 먼저 손길을 내민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엄마 엄마 다정하게 부르면서. 영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서. 대답이 없자 윤은 결국 훌쩍인다. 거기까지 가면, 늘 자책과 후회가 동시에 찾아온다. 이게 뭐라고. 그냥 안아주면 끝나는 일인데. 이 작은 사람에게 그러는 내가 못났다 싶은 한편 끝까지 버티는 마음을 본다. 그제야 윤을 쓰다듬으며 안아준다. 토닥인다. 아이는 금세 멀쩡해진다. 


윤이 오늘 원에서 본 인형극 이야기를 했다. 징징이 공주가 해피 공주가 되었다고. '윤은 징징이 공주야 해피 공주야?' 물었더니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나는 그냥 엄마 아기인데?' 한다. 방금 전에 엄마 미웠냐고 또다시 묻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가 안아주지도 않고,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고, 그래서 미웠어.' 고작 네 살인 작은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안다. '엄마가 오늘 많이 지쳤나 봐. 아까 윤이 어제랑 똑같이 이 닦기 싫다고 해서 엄마도 화가 났어. 어른으로서 엄마가 더 이해해줘야 하는데 미안해. 진짜로 미안해.' 하니 '괜찮아' 한다. '눈물이 날 것 같아.'라고 하면서. 이토록 섬세한 마음결에 내심 놀란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왜 이렇게 나한테 화를 내지? 굳은 의문은 내가 엄마가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엄마, 엄마는 옛날에 왜 그랬어?' 언젠가 물으니 엄마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사투리 때문에 억양이 세서 그런 거라고. 순전히 말투 때문이지 오히려 언제 화를 냈냐고 했다. 생각하지 못한 반응에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바란 건 사과였을까?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만약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정확하게는 이런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살려주신 분, 내게 자기 가치감을 주신 분, 뇌의 입장에서 볼 때 '나' 자신과 동일한 분, 객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온갖 인간적인 약점을 지닌 분. 그러니까 내가 더 힘들게 한 분. <내면소통> 김주환 교수님께서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모두 인정하는 바 그래도 나는 사과를 잘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여러 번 마음이 주저앉아 통으로 가라앉은 날, 엉망진창인 것도 나. 약한 것. 부족한 것. 서툰 것. 그 모든 게 다 나다. 에두르지 않고 인정하면, 아이는 어떤 어른보다 더 깊이 엄마를 안아준다. 나는 아이들로부터 관대함을 배웠다. 사과를 잘하는 엄마로서 살아가는 건 약한 게 아니라 작고 이상한 꿈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일. 그 일을 통해 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단단해진다. 어제보다 조금쯤 나은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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