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지사에 자리가 난다. 누가 가겠냐는 메일에 나는 냉큼 손을 들었다. 며칠 전 학교를 같이 다녔던 회사 선배와 이번 제주 발령자는 누가 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장실 앞에서 선배를 마주쳐서 한창 ‘이번 제주는 내가 가게 될 것 같다’는 농담 반 진담 반, 우스갯소리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내 전 팀장님이었던 차장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우리 앞으로 지나가셨다. 차장님은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사실이 있었다. 지금 사무실로 오기 전 나는 ‘1인 근무 배제’를 당했다. 회사에서 주저앉는 바람에 내 병력이 밝혀졌고 내가 약을 먹는다는 사실과 내게 입원 이력이 있음을 관리자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전 사무실에선 주말에 혼자 근무하기도 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주말 근무에 배정되지 않았다. 의문을 가지던 찰나 스케줄을 짜던 내 동기가 1인 근무 배제 인력이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주었다. ‘나는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그게 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께름칙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마지막 주까지 주말 근무엔 배제당한 채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기간은 합쳐서 채 두 달이 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병원 사람들은 멀쩡했다. 처음 입원했을 때 나는 며칠을 내내 울었는데 먼저 입원한 언니들은 그만 좀 하라는 엄마더러 “그냥 울게 놔두세요, 오죽하면 저러겠어요”라며 내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폐쇄병동이었던 두 번째 병원에서 우리는 ‘인격이 있는 존재’로 취급받지 못했다. 의사나 간호사가 보기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제지당했고 주사를 맞거나 몸을 속박당하기도 했다. 병동 안에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당했다. 핸드폰은 압수당했고 집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선 병실 안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했다. 나는 예외적으로 병동 안 거실 같은 공간(간호사의 눈이 닿는 공간)에서 핸드폰을 쓸 수 있도록 허락받았는데 그나마도 어느 날부터는 납득가지 않는 이유(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로 간호사에게 압수당하고 말았다.
그 병원에 발길을 끊은 건 내게 대운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내가 나보다 10살도 더 많은 그 병원 입원 남자와 모텔에 간 걸 들키는 바람에 엄마는 다시 신촌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 시절 나는 ‘정상인’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그건 집에서 특히 더 그랬다. 혼자서의 바깥출입은 금지당했다.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검수당했다. 엄마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긴 시간 하소연을 하곤 했다. 내 모든 말과 행동이 다 문제였다. 그것은 ‘정상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내가 ‘이상 행동’을 할 때마다 엄마는 내게 약은 먹었냐, 자꾸 약을 거부해서 그렇다며 ‘약 타령’을 했다.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엄마의 약 타령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집을 나왔다. 한라산 정상을 찍고 와서 조금 흥분한 채로 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엄마는 뜬금없이 “너 요즘 약 안 먹는 것 같더라”라며 또 그놈의 약 타령을 했다. 멀쩡히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정상인 범주엔 못 들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집을 구했다. 뛰쳐나오다시피 하고선 의식적으로 약을 끊었다. 회사에서 다시 증상이 발현되는 바람에 나는 병에 굴복하고 말았다. 내 병을 인정하고 열심히 약을 먹는다. 의사가 나를 정상인 취급하지 않는다는 걸, 그의 눈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건 환자의 이상 행동일 뿐이라는 걸 알지만 저항하지 않는다. 이젠 나조차도 약 없이 내가 어떻게 될지 두려워서 병원에서 오라면 오고 약을 먹으라면 먹는다. 그저 무사히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면서 한 ‘인간’으로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희정의 『일할 자격』이라는 책의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정신 질환자들의 직장 생활 이야기가 반가웠다. 보수적인 우리 사회에선 정신 질환자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기를 꺼린다. 그들이 어찌저찌 병력을 숨기고 직장에 들어갔다 해도 병력을 들킨 순간 받는 건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류의 취급뿐이다. 코로나 시절 구조조정 소문이 돌았을 때 나는 공포에 떨었다. 정신 질환이 있는 여자 직원.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가 내치고 싶은 사람의 우선순위에 내가 들어갈 것 같았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늘 그 생각을 달고 살았다. 회사에선 야간 근무나 1인 근무도 빼주는 아량을 베풀었지만 달갑지 않았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부림 당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가 좀 더 안전해질 것 같았다.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부려질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직장을 빼앗기고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긴 싫었다.
가족 두 명이 동의하면 나는 다시 정신병원에 갇힌다. 내가 보는 정상의 범주와 내 가족이 보는 정상의 범주가 다르다는 것이 예전엔 큰 두려움이었다. 나는 내가 정상인 것 같은데 가족이 보기에 이상하면 다시 그곳으로 끌려가야 할까 봐 무서웠다. 법과 제도 앞에 한 인간이 이렇게도 나약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물론, 지금이야 나는 내 가족이 내게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그만큼 나 자신을 믿는다.
회사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자신은 아직 없다. 나는 내게 회사라는 존재가 없어져도 살아갈 수 있는 근육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득바득 산다. 그래도 지금과 같은 생활을 오래 버티고 싶다. 회사가 내 약점을 오래도록 눈감아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