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목격자들』이라는 책을 꺼내 들었다. 서두에서 이 책은 과학기술학 책임을 밝힌다. 과학기술학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지만 나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 책이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일반적인 ‘과학책’과는 다른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1장에서 저자 성한아는 철새를 조사하는 ‘센서스’의 현장 조사원들을 따라 철새를 세러 다닌다. 그녀는 센서스의 원칙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연구 대상에 인위적인 조작이나 자극을 가하지 않겠다”는 것임을 밝힌다.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긋고 페이지 모서리를 살짝 접어두었다.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표본을 채취하듯 대상을 바라볼 수도 있을 일이지만 대상을 존중하고 위해를 가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드러난 것 같아 좋았다. 이 책은 네 명의 과학기술학자가 같이 쓴 책이라 아직 세 장이 남았지만 이대로라면 나머지도 후루룩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겸손한 목격자들』의 서두를 읽으면서 문득 학부 때 내 생각이 났다. 항공 교통 학도였던 시절 나는 항공산업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환경과 관련한 일을 하거나 환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항공산업은 대기오염의 주범이었다. 거의 모든 수업에서 실제로 항공 교통이 대기오염을 발생시키는 비율은 극도로 낮다고 설명하지만 그건 이 산업에 머물러도 괜찮다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항공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어떻게 보면 내 신념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나마도 집에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나 하던 생각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던 나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입사지원서를 냈다. 겨우 회사에 들어오고 나니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은 달아났다. 내가 하는 행위의 정당성은 따져 묻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고고한 그 자태로 얼룩 하나 묻히지 않으며 버텨낼 수 있겠는가.
이전 사무실에서 나는 항공기에 연료를 얼마나 실을지 결정하는 일을 했다. 항공기가 무거우면 공중에 뿌리는 연료도 많아지는 법이다. 원래는 연료를 적당히 실었다. 아니, 오히려 적게 실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한 번 내가 연료를 적게 오더(order)한 항공기가 ‘연료 부족’ 사유로 원래 목적지와는 다른 공항에 내리고 나니 더 이상 연료를 적게 실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하여 매 편 연료를 가득 채웠다. 과연 내 행동은 옳은 것이었을까? 연차가 쌓일수록 일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한 것인지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위에서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만다. 때로는 부당한 지시에 ‘노(no)’를 외쳐야 하지만 그에 드는 잡음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사람들이 이러니 나치도 집권할 수 있었을 거야……’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가 하는 행위에 옳고 그름을 따져 묻는 일을 포기해 버린다. 의도적 망각이기도 하다.
어떠한 산업에 연루된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어쩌면 답은 뻔하다. 다만 그게 너무 피곤한 일이라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춰선 안 된다. 내가 하는 행위가 내가 소속된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나아가 이 사회에 어떤 파급 효과를 끼얹을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언젠가 나는 잘 가공된 ‘나사’ 하나가 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누구나 시스템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너무 크거나 작아서 결국엔 기계를 망가트리게 되는 ‘어긋난’ 나사가 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튕겨 나가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겠다. 무던하게 잘 묻혀서 튀지 않는 그런 존재로 말이다. 지금은 모르겠다. 제도에 맞춰 완벽하게 가공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나사나 부품이 아닌 결국엔 한 인간인데 말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사무실에서 나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면 편해지는 것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몸은 어느새 내가 편하게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생각한다는 건 어쩌면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늘 하던 것에 의문을 가지고 비틀어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편해지기. 아직 개선의 여지는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