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에 관한 짧은 이야기

그러면 나는 마른 세수를 하고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 낸다.

by strangecowcow

늦게 일어나서, 전 날 과음한 탓에, 아침부터 중요한 회의가 있는 바람에. 이런 저런 이유로 인간관계에 미처 접속하지 못한 날이 있다. 우정에도 사랑에도 로그인하지 않은 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난 아직 자고 있는 사람이다. 나의 본체라고 해도 좋을 무언가는 여전히 꿈속에 머물고, 돈을 벌어야 하는 부스스한 녀석은 정신이 없다.


투두리스트만으로도 하루를 살 수 있을까. 네모 박스에 체크를 하는 선명한 쾌감만으로도? 투두리스트에 길들여지다 보면 언젠간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일도 '투두'가 되고, 모든 곳엔 출입증 카드 찍는 센서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났더라. 기상 시간 옆의 네모 박스에 체크를 했던가. 기상이 투두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날에도 나는 살아있었던가. 기상 시간을 지키지 못한 날에도 나는 깨어있는 걸까.


전화가 울린다. 몽중을 가르고 수신된 음성.

일어났어. 출근했지. 연락이 없길래. 알겠어. 좋은 하루 보내.


그러면 나는 마른 세수를 하고 내가 누구인지 기억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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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티드 에세이 <때려치지 않는 사소한 이유>는 매주 월, 수, 금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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