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불행을 등에 업고 들어온 기회...

기회라고 다 같은 기회가 아니지 않은가!

by kseniya


며칠 전 남편의 일터에 이민국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400명이 넘는 멕시코 불법체류자들은 어느새 쥐도 새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멋모르고 일하던 자신이 불법 고용되어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던 잠깐의 기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던 한국 사람들만이 이민국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다. 그들은 이렇게 한 번 잡히면 미국을 10년 이상 들어올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조차도 모른채, 왜 자신들이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추방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남편의 말로는 그 거대한 사업장이 순식간에 조용하게 변했고, 멕시칸들은 그 후로도 몸을 사린다고 한동안 일터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살면서 이런 연유의 모습들을 참 많이 보고 살았다. 이 곳 남부에서는 멕시칸들을 구하기가 힘들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몸값이 엄청나게 뛰는 실정이다.

신분상의 이유로 그들은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손수 운전까지 해 가면서 그들을 모셔와야 하는 실정이기도 하다. 새벽 이른 아침 도시락을 싸고 대중교통이 운행되지 않는 시간이라 먼 길을 걸어서 자신들의 일터로 오는 캘리포니아의 멕시칸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셔터문이 닫히고 난 그 날은 조용히 지나갔다. 형사들의 자취가 사라지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도시는 다시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날의 그들도 아마 쥐새끼가 쥐구멍을 찾아 들어간 그 순간 그들의 일터나 앞으로의 생각으로 걱정과 불안으로 거친 숨을 쉬며 웅크리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외다리를 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고단한 삶.


오히려 그들의 불안하고 비정상적인 삶으로 인해 더 많은 기회들이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기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나에게 다가온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이 들기보다는 남의 불행을 등에 업고 타인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까지 그 기회의 순간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아쉬운 기회들이었다. 그러나 조금 더 더디게 나의 삶이 나아가겠지만 결국 나는 검은 유혹에 손을 잡지는 않았다. 다른 이에게 그 기회가 넘어가서 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을지는 모르나 거기까지는 내 소관이 아니었다.


그 날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형사님과 나와의 관계는 그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형사님은 나의 사무실에 들러 그 날의 실패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나에게 말을 해 주었고,한 번씩 이렇게 기습으로 나와서 몇몇 친구들을 본보기로 잡아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세상은 보이는것도 때로는 보이지 않는 척 넘어가는 알 수 없는 요지경같았다.

그 날 나는 손으로는 커피를 더 신경 써서 타 주면서 속으로 속삭였다. " 형사님 미안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중부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사건이 생겼는데 나에게 통역을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일이 끝난 후에나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그 시간에 와도 괞챦다고 했다.

그 당시 공적인 통역비 중에 러시아어가 시간당 가장 단가가 높을 때였다. 사이드 머니로 일거리가 생긴 거에 대해서 적잖이 기분이 좋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경찰서에 도착해 보니 러시아 여자 셋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이 세 러시아 여자는 언뜻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수줍은 젊은 아가씨들이었는데 러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매춘행위로 걸린 케이스였다.

이 사건은 티브이 뉴스로 대대적으로 중계되기도 했고, 내가 통역한 이 사건의 내용이 신문에도 나올 정도로 사실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획기적인 사건이기는 하였으나 사건 자체는 뭐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사건이었다.

중부경찰서에서 그 당시 잠복근무를 하면서 까지 그들을 표적수사를 한 것인데 재수 없게 일반 민간인이 걸려든 것이었다. 이태원이나 수많은 밤의 현장에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러시아 직업여성들이 매춘을 일삼고 있다는 소리는 나도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법적으로 구속을 하는 그 시점에서 일반 민간인들이 걸려든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경찰서에 들어와 적지 않게 겁을 먹고 있었다.

한 친구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나에게 이제 자기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쉴 새 없이 물어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어보니..

그들의 대답이 참...

그중에 이쁘장하고 순진하게 생긴 아가씨가 그 얼굴과는 참 대조적인 말을 내뱉었다.

돈도 벌고 재미도 보고.....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사실 나는 그들의 문란한 생활들을 익히 알기에 그 안에서도 엄청 조심하고 웬만하면 그들과 엮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취조가 시작되자 어디선가 낯익은 남자가 나보다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제냐였다.

그는 사할린 교포로 그 일대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었다.

모스크바나 대도시의 거상들을 자신의 바이어로 가지고 있는 친구였는데 그 일대에서 가장 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만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도 소문으로만 들었지 제냐와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은 없었다.

통역은 두 사람이 번갈아서 하게 되었다. 나는 여자들을 맡고 있었고 같이 잡혀온 남자들은 다른 곳에서 심문을 받았다.

형사들의 질문이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증거물로 펼쳐진 수많은 콘돔들이 여기저기 나불어져 있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통역이라지만 구역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오고 가는 대화가 심상치가 않았다.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마치 그 안에 있는 듯 모멸감에 얼굴이 붉어지고 다시 한국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수치심은 내 몫으로 돌아왔다.

돈을 받고 밤의 놀이를 즐긴 그들의 결과는 참으로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비참했다.

계속되는 구역질 나는 질문들과 오고 가는 더러운 대답들 속에 나는 지쳐갔고, 보다 못한 제냐가 나를 집에 보내라고 형사님에게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다. 밤은 자기가 셀 테니 크세니아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 자체를 통역하는 내가 보기에 안쓰러웠나보다.

제냐의 부탁으로 그제야 형사도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거라는 걸 알았는지 자신들의 일이 이렇게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상황이 설명이 되어야 해서 그렇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경찰서를 나서려는 순간 다른에서 취조를 받고 있던 상대방 한국 남자들 세 명이 벗어놓은 양복으로 얼굴을 가리며 나오고 있었다. 나의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멸감으로 그들을 향해 거친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고 남편일 저 짐승 같은 것들이 어떻게 놀았는지를 알고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풀려났지만 , 그 다음 날 뉴스에 그 저녁까지도 나에게 자신들의 안위를 불안해하며 취조를 했던 러시아 여자 세명이 그 흔한 경찰서 장면인 엎드려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상황이 방송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법대를 다니고 있던 아가씨 너무나 이쁘고 순진해 보였던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같은 여자로서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 당시 구속을 면하지는 못했을 텐데.. 그 이후엔 어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돈을 주고받은 정황이 표착이 되었기 때문에 매춘 사실은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뉴스에 이어 그다음 날 신문에도 그들의 기사가 나왔다. 내가 통역했던 그대로 문자로 찍혀 나온 신문을 보고 나는 자랑스러워해야 하는지 당혹스럽긴 했다. 그래도 신기하기는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아버지가 받아 논 전화로는 방송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단다. 나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SBS 방송작가였다.

뉴스에 나온 그들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방송을 하고 싶다는 이유였는데 그들을 통역했던 나를 경찰서에서 알려주어서 통화를 한 거였다.

그 방송이 나가려면 그들과 의사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나에게 해 달라는 거였다.

순간 갈등이 생겼다. 분명 나에게는 기회였다. 더할 수 없는 기회..

그런데 그와 동시에 유치장 철창 사이로 갇혀 있는 그들에게 마이크를 대고 그 상황들을 물어본다는 것이 인간적인 도의로는 선뜻 그 기회에 응하기가 꺼려졌다. 그들의 까발려지는 인생에 내가 더 얹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나는 가슴속으로는 아쉬웠지만 그들의 불행을 등에 업고 나의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직도 그날의 기회를 나의 부모님들은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나 후회하진 않았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검은 유혹들이 나에게 스쳐갔지만, 난 그럴 때마다 타인의 불행을 기준으로 삼아서 판단을 했다. 나는 그런 식이 아니더라도 좋은 기회는 얼마든지 올 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살아보니 잘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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