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가장한 인연이 다가온다.

타냐 아줌마와 빅토르 아저씨

by kseniya

시간은 빠르게 나의 청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남들보다는 좀 더 특이하게 , 좀 더 늦게 시작된 나의 청춘은 그 시간들을 만회라도 하듯이 가속도를 붙이듯이 빠르고 정확하게 지나갔다.

친구들이 평범한 그 시기에 맞는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차곡차곡해 나가고 있었다.

나를 찾는 바이어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들과 연관되어 있던 사할린 교포들과의 관계도 점 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편하게 대하던 나의 성격 덕에 그들은 서서히 문을 열고 나를 대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는 묘한 질투감도 작용하기도 했다. 세상 어느 살이나 마찬가지이지 싶었다.

나는 이 현상을 은근히 즐기는 경우도 더러는 있었다.


더 좋은 조건으로 새로 들어간 회사의 사장은 얼굴에서 풍기는 자체가 남달랐다. 서글서글한 미남에 예의 있는 중년의 사장은 나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그 이후로도 쭉 회사의 모든 것을 나에게 거의 맡기다시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주던 사장의 가장 큰 흠은 바람이었다.

사무실을 거의 비우고 나타나지 않던 사장은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급기야는 전화까지 먹통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중에서야 아는 사실이었지만 숨겨놓은 애인과 태국으로 밀월여행을 가느라 나의 삐삐나 비상연락을 전해 받지 못한 것이었다.


사람이 좋은 것과 업무태만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주는 대로 월급이나 받아먹으면 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모든 비즈니스에는 책임과 신용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그 두 가지가 이 사장에게는 없었다.

가장 힘든 오너이기도 했지만 맘만 먹으면 가장 쉬운 오너이기도 했다.

나의 불만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고 조만간 그 불만이 어떤 식으로든 터질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을 무렵 가끔 가다가 한 번씩 나의 사무실에 들려 커피를 마시고 가던 두 사람이 오늘도 예외 없이 들른다. 그 일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는데 처음엔 부부인 줄 알았는데 이 곳에서 만나 거의 부부처럼 사는 파트너였다. 40대 후반으로 넘어가는 타냐 아줌마와 빅토르 아저씨는 내게 엄청 친절했지만 이 사람들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 당시 간간히 러시아 상인들 중에 중고차를 사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러시아 시장 안에서 유명한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는데 젊은 시절 북한 장교 출신으로 러시아말을 곧잘 하는 사람이었다. 이 분이 타냐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 작은 모퉁이 하나를 빌려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달에 차 두 대만 팔아도 웬만한 월급이 나온다고 했었다. 어떤 경쟁 상대도 없었다.


타냐와 빅토르 아저씨는 러시아 단골들이 많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의 사업을 할 수가 있었지만 신분상의 문제가 항상 걸렸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엄청 구두쇠라서 그들이 데려다준 바이어가 차를 사도 커미션을 주지 않았다. 그에 화가 몹시 화가 나 있던 상태였다.

비즈니스는 모든 것이 돈으로 움직인다. 심지어 사람의 관계도 돈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많았다.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잔인함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돈에 대해서는 순진했지만 나의 몫을 챙기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따냐와 빅토르는 나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너도 법적으로 문제없는 내국인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차를 팔 수 있다고 나를 부추겼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상대로 하고 통역만 했을 뿐이지 내가 직접 사업을 한다는 생각은 한 번 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차를 팔 수 있는 모든 전반적인 것들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정작 나에게 필요한 일들인지 그때는 잘 몰랐었다.

후에 이 일은 결과적으로 내 인생의 엄청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무엇을 해도 되던 시기였다.

그저 그런 통역업무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냐 작지만 내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 적지 않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사장님에 대한 나의 불만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으니 시기적으로도 뭔가가 터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또 한 번의 배팅을 할 시기가 온 것 같았다.


며칠 후, 사장님을 만난 후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더 이상 일을 못 할 것 같다고...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장님의 얼굴을 보자 말을 꺼내기는 힘들었지만 솔직하게 말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사장님과 같은 사람과는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사장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차마 바람피우기 바빠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과는 일을 못하겠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사장님은 자신의 금고까지 나에게 맡길 정도로 나를 의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 모든 일들을 제치고 나만 믿고 있다가 당한 것이었다.

난감한 사장님은 말을 잊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긴 침묵후에 원하는 거를 다 들어줄 테니 그만두지만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배팅을 할 순간이 다가온 거 같았다. 그 당시 나의 사장님의 재력은 그 일대에서 가장 믿을 만할 수준의 재력가였기에 그의 말은 그냥 해 본 말은 아니었다.

그럼 내 월급을 그대로 주시고 내가 차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사무실을 같이 쓰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대신 차를 팔고 난 이윤에 대해선 반반으로 나누자고 했다.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지금처럼 사무실을 전반적으로 맡길 수가 있었고, 나는 나의 일을 위해서 사무실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차가 많이 팔리면 그만큼 사장님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조건이었다.

서로 쿨하게 합의하고 배팅은 싱거울 정도로 무난하게 끝나버렸다.


나의 또 다른 경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기운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우연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필연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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