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모든 것이 내 위주로 돌아갈 것 같고, 남이 보기엔 쉬운 인생일 것 같지만 그 속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존재한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비즈니스의 상대 파트너인 러시아 상인들과의 관계는 더없이 좋았지만 문제는 나와 같은 동료들의 문제였다.
사업의 규모가 커지자 원 사장은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서글서글하다기 보다는 능글맞게 자신의 처신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을 운전기사로 고용을 하였다. 나는 이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사장의 결정에 나는 번복을 할 수가 없었다.예의 사람 좋게 구는 그의 능청스러움에 별다른 태클을 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별 다른 일이 없거나 공장을 갈 이유가 없을 때 그는 나와 함께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있었다.
어느샌가 옆집 사무실에 총각들과 한 편이 되어 새로운 그룹을 이루어 나가고 있었다.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는 서서히 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참으로 착각을 많이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 같은 여자가 이런 일을 하니 이 일이 무척이나 쉬워 보였나 보다.
남이 볼 때는 그저 웃으면서 말 한마디 러시아말로 하면 그냥 돈이 나오는 줄 쉽게 착각을 한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책임과 수많은 노력을 무시한 채 그저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존재이기도 했지만, 여자가 하는 일이라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쉬운 여자가 절대 아니었다.
강단도 있었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대참도 있었다. 지금까지도 한결같은 나의 성격은 아무리 여자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근성들이 내 안에 강하게 남아있었다.밤길 조심해야 하는 성격이다.
한국 남자들이 싫어하는 유형의 성격을 가졌나 보다.
오죽하면 기가 특별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전생의 나는 바른말하다가 참수형 당하는 장군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났다.
역사드라마를볼 때마다 나무 때기에 올려져 있는 잘린 나의 머리를 생각하면 오싹하기도 했지만, 아무리 전생이지만 왕을 배신한 간신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매일 아침 사무실 청소를 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사람을 자기식으로 끌어들일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왠지 모르게 그의 모든 행동이 가식으로 느껴지고 늙은 여우의 교활함도 살짝살짝 그의 행동에서 은연중에 나타나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원 사장은 여전히 사무실을 비우는 날이 더 많았다. 사람의 본능 중에 남녀 간의 욕정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된 사람이기도 했다.
금수저 중의 금수저로 태어나 일다운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력을 지키기만 하면 됐던 남들이 보기에는 한 없이 부러운 금수저의 인생... 그러나 우리 같은 흙수저 같은 세상에서는 느낄 수도 없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어린 여자아이의 치마 속에 빠져 있을 때 나는 그이 재산을 불려 주기 위해 수많은 밤을 새우며 그의 금고를 지켜주는 충실한 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는 나 같은 충실한 충견도 있지만 돈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는 또 다른 개가 냄새를 맡고 있었다.
사장님의 눈에 들어오기만을 바라며 사장님이 나타나면 예의 순진하고 충실한 개의 모습을 보여 주던 그는 서서히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사무실을 비우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을 알고 그는 서서히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그는 점점 완력 비슷한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이 돼도 사무실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도 앉지 않는 사장님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비슴듬히 누워 서서히 오다를 받아 놓은 서류들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그 서류를 왜 꺼내세요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으세요.."
"그냥 업무 파악을 하려고 그러는 건데..."
" 그 업무는 대리님이 하는 일이 아니니 그 서류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세요"
그의 얼굴에서 아니꼽다는 비열함이 스쳐갔다.
그의 행동이 직접적으로 의심스러울 때부터 나의 퇴근 시간은 그 사람의 퇴근 시간 이후가 되고 말았다.
모든 금전적인 상황과 금고를 나에게만 맡겨 놓았던 점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 사장이 없어도 오더는 받아야 되고 그 돈을 또 공장으로 송금하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사실 사장님이 없어도 사무실은 굴러갔다. 서서히 그는 사장님의 금고를 탐하기 시작했다.
원 사장은 사기당하기 딱 좋은 사장님이었지만 나는 그런 것을 그저 두고 보는 그저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아직도 아기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45 키도 안 나가는 나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나의 속내는 그 어떤 남자보다도 강단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간과했다. 저 애 같은 여자아이 하나만 어찌해 보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계속되는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나는 제동을 걸 수밖에 없었다
선을 넘는 인간들......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탐하는 인간들....
점점 그의 행동은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나게 했다.
사장이 없는 날엔 이 사무실의 주인공은 자신인양 행동을 하고 서서히 나에게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아랫것 인양 나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멈추지 않으면 사장에게 말을 하겠다고 강하게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더욱더 심해졌다. 조그만 게 까분다는 식으로 그 큰 키와 덩치로 나를 완력으로 누르려고 하는 제스쳐까지 취하는 것이었다. 급기야는 살다 살다 나를 상대로 그런 욕이라고는 들어 본 적도 없던 나의 고상한 일상에 그는 거칠게 나를 향해 공격을 해 왔다. 살면서 나의 입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나를 위협했다. 만약 사장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둥..... 내 속은 분함과 모멸감으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옆에 사샤가 있었지만 그는 나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만약에 나에게 물리적인 행동을 가했을 때 나의 방패막이가 되어 줄 수는 있어도 사샤는 지금의 상황을 크게 나보다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검은 세상의 속내를.... 오로지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와 나의 날 선 텐션이 계속되는 나날들 속에도 나의 일은 서서히 자리를 찾아갈 정도로 손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이 갈수록 심해지자 나는 결국은 사장님에게 이야기할 수 박에 없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나는 더 이상 그와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지만 차마 당신의 돈을 노린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저녁 나와 사장님의 대화가 그에게 들어갔는지 미친개가 날뛰듯이 그는 나에게 심한 위협을 가했다.
욕 같지도 않은 욕을 퍼부으며 밤길 조심하라는 식으로 나를 협박을 했다.
그러나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 섬뜩한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죽일만한 간도 못 되는 위인이었다. 그저 남의 돈을 탐하는 사기꾼의 시장잡배 같은 놈이었다.
사실 나는 겁이 무지 많은 사람이다. 내가 서 있는 이 세상은 생각보다도 훨씬 위험한 세상이었다. 특히나 나 같은 여자에게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그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내가 내일까지 살아있다면 너는 이 바닥에서 발 딛고 살지 못할 거야"
다음날 난 여전히 살아 숨 쉬며 나의 일터로 향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사장님 앞에 고개 숙이고 있는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그 날 이후로 나의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