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질 건 없었다. 사무실 정문 앞에 오토모빌이라는 현수막만 만들어서 달아놓으면 그만이었다.
돈이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원 사장의 몫이었다. 원 사장은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는 것에 대해 무척 흥분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미 원 사장과 나는 고용주와 고용인의 사이가 아니라 대등한 협력관계의 파트너 사이가 되었다. 오히려 내가 더 유리한 입장이 된 듯했다. 처음 시작은 그러했다.
모든 것을 결정할 때 나는 신중하다. 기다림이 지루할 정도로...
그러나 한 번 생각의 결정이 끝이 나고 이어지는 행동은 엄청 신속하다.
생각은 길게 행동은 신속하게....
나의 긴 고민 끝에 내린 행동은 신속했다.
그에 발맞춰 나의 운명의 달빛은 그림자처럼 나의 길을 안전하게 따라가 주었다.
나의 결정에 의해 타냐와 빅토르 아저씨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오랜 바이어 중에 차를 상대하는 이르쿠츠크에서 온 친구들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들과의 비밀스러운 미팅은 그저 보통의 만남이었다. 위짜는 술주정뱅이였지만 예의 사람 좋은 사람이었고 그의 파트너인 세르게이 또한 보통의 러시아 남자였다.
그들의 우애는 생각보다 돈돈해 보였다. 타냐의 중개로 인해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도와주겠다고 안심시켰다.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다음번에 올 때 차를 주문할 거라는 약속을 하고 그들은 러시아로 다시 돌아갔다.
그 사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업무를 파악해야 했다. 적어도 한국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나는 이해해야 했고, 단순히 차를 파는 문제에서 나는 수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었다.
수출송장이 뭔지도 몰랐던 나에게 앞으로 주어지는 일들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단순히 상대방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통역업무만 했던 지금까지의 상황과는 달리 모든 것이 나의 판단과 나의 능력에 따르는 온전히 나의 책임하에 들어가는 순간들이었다.
긴장됐지만 나는 기계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영혼은 없고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살아나가는 순간들이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그러했다.
이 길은 내가 원하던 그 길이 아니었기에...... 나는 진정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내가 들여놓은 이 순간 나의 평범한 삶은 이미 물 건너 가버리고 등골이 오싹한 거친 삶에 나도 모르게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것이 운명이라면 피할 수 있을까?
나는 평범하게 살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없었다.
이주마다 주기적으로 한국을 들어오는 위짜와 세르게이는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나의 첫 손님이 된 것이다.
구체적인 차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긴 상황이 발생했다.
오더 작성과 모든 것이 러시아어로 이루어져야 하는 데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공식적인 나의 일이 끝난 후 우리는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저녁을 사무실에서 때우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위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서류를 보여주며 나보고 그대로 따라서 적으라고 이야기했다.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 같았다. 해는 지고 어둠이 칠흑같이 내리고 사방의 셔터문들이 내려질 때까지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비즈니스를 위해 밤을 새우며 일을 했다.
새벽이 다가올 때 일은 끝났다. 나에게는 새로운 서류가 생겼고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힘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일을 끝마치고 난 후의 뿌듯함은 어느 수험생의 마음과 같았다.
나는 곧바로 찜질방으로 향했다. 9시면 시작될 나의 또 다른 업무시간을 위해서.....
다음 날 위짜와 나는 장안평을 돌기 시작했다.
위짜가 필요한 차를 구매하기 위해서다. 위짜가 원하는 차의 연식과 차종을 이야기하면 가격은 위짜가 그 범주를 정해 준다. 그러면 나는 거기에 나의 커미션을 부치고 차와 러시아를 통관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나의 바이어에게...
위짜가 필요한 차를 사고 난 후, 우리는 또 사무실에 죽치고 앉았다.
한 번에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위짜는 또 이것저것 자세하게 나에게 설명을 해 준다.
그렇게 우리는 사업상의 관계를 넘어선 친구가 되어갔다.
경쟁자를 친구를 만드는 능력은 내가 가진 최상의 능력이었다.
러시아의 모든 친구들이 나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들은 나의 친구가 되어 있었다.
돈이 오고 가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각자의 가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러시아의 역사나 과학이나 그런 이야기들로 나의 사무실은 이야기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상인이 되기 이전에는 꿈 많던 학생들이었고 과학도 들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을까?
나 또한 그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문학과 역사를 듣는 순간들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나의 꿈이 그곳 에 있었기에.. 잠시나마 나에게 위로가 되던 순간들을 그들이 나에게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