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금수저란.....

그렇게 부러운 인생은 아니더만...

by kseniya

방금 티브이에서 튀어나온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서글서글한 미남에, 아버지가 라이온스 클럽 회장을 역임할 정도의 대한민국의 상위 1프로의 자산을 가지고 있던 나의 사장님 원 사장!

그는 자신이 금수저란 것을 티를 내지는 않았다. 누구보다도 평범하려고 노력했고 돈을 그렇게 허투루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모든 것을 믿고 맡겼다.



회사를 확장하는 오프닝에 세상모르고 귀하게만 살았을 것 같은 와이프와 그녀의 남동생까지 대동하고 왔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저 돈 많은 화목한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대한민국 상류층의 화려한 인생인 줄 알았다. 그의 와이프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매일 같은 날의 환한 대낮을 언제 본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고단하게 달려온 나의 인생과 너무 비교되어 살짝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질투 정도는 당연하게 하지 않을까?

얼굴은 어디까지가 자신의 얼굴인지도 모를 정도로 인공미가 흘렀지만, 옷 가지들은 고급을 벗어나 우리들은 감히 가질 수도 없는 그런 하이 브랜드로 둘러 쌓여 있어 그 자체로도 사람 자체가 고급스러웠다.

나의 한 달 월급을 훌쩍 넘어가는 고급 옷들에 쌓여 있는 그들의 인생.... 한 없이 부러워하기에는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바라만 본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나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난 후부터 원 사장의 비밀스러운 연애는 갈수록 심해졌다.

눈은 항상 삐삐에 가 있고 삐삐에 대한 답이 바로 오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비밀스러운 연애는 그에게만 비밀이었지 주변에는 그 냄새를 스멀스멀 다 흘리고 다녔다.

사춘기 소년의 사랑처럼 그의 얼굴은 항상 붉어져 있었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의 사생활이라서 그렇게 터치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 개업식에서 만났던 그의 와이프가 왠지 모르게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알까?

돈 많은 남편의 이중생활을.....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그의 순진함에 나는 짓궂은 장난을 참 많이도 했다.

"사장님 지금 연애하세요?"

"애인한테 오는 전화 기다리세요?"

"얼굴이 왜 이렇게 붉으세요?"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43살의 중년의 돈 많은 금수저를 저렇게 사춘기 소년처럼 해맑게 만들 수 있을까?

남몰래 다녀온 밀월여행의 증거품으로 사무실 깊숙한 곳에 숨겨놓았던 사진을 발견했을 때, 원 사장이 그렇게 빠져 있었다는 것을 의아해할 정도로 그 사진 속에는 복스러운 평범한 20살의 앳된 여자가 웃고 있었다. 우리의 결론은 하나였다.

젊음!!!!!!!! 그가 가지지 못한 젊음에 그는 자신의 돈으로 욕망을 채운 것이었다.

그의 비밀 행각은 갈수록 더해갔고 급기야는 두 집 살림을 차린듯해 보였다. 직원들과 단체로 낚시를 갔다 온 날 그는 집으로 가지 않고 잠실 아파트의 한 동에서 내렸다. 우리는 그 날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나이 20대 후반, 건조한 나의 일상에 그의 삐뚤어진 감정이 어느 면에서는 부럽기도 했다. 세상의 수치심보다는 자신의 부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감추려고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하루 종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그 더러운 순수함이....


젊음 속에 빠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의 사업은 나 혼자 밀고 가기에는 너무나도 벅찼고,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반면 내가 추진하는 일들은 점점 그 시대의 새로운 시장의 변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달러가 기존의 800원에서 계속 올라가자 러시아 상인들은 가죽의류에서 차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바쁜 시간에 러시아 상인 3명이 나의 사무실을 기웃거린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자동차 로고가 붙어 있는 거 같은데, 자동차를 취급하는 회사냐고 물러보길래 그렇다고 하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크라스나 다르에서 온 사샤와 빅토르이다.

자기는 원래 부산에서 자동차를 수입하는 사람인데 서울 자동차 시장이 훨씬 가격이 좋다는 소문에 이 곳 서울로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 당시 부산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배가 있어서 서울보다 훨씬 먼저 러시아 무역이 성행하고 있었다.

차는 서울에서 구입을 하고 서류 절차나 통관 절차는 부산에서 자신들이 거래하는 무역회사와 하고 싶다는 뜻을 내 비쳤다.


내 입장에서 그렇게 손해 볼 것도 없었다. 장안평을 돌며 차를 보기 시작했다.

이 친구 뼛속까지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비즈니스라고는 해 본 적이 없던 나에게도 이제까지 몰랐던 비즈니스 본능이 살아 있었나 보다.

차를 보기 시작하자마자 사샤가 나에게 물어본다.

"저 중개인이 너에게 저 차 가격이 얼마라고 말하니?"

순간 멍했다. 이내 그의 속내를 알아차린 나는

"너는 이 차를 너네 나라로 사 가지고 갈 때 여기서 사 간 차 가격을 손님에게 그대로 다 말해 주니?"

사샤는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본다..

"절대 말하지 않지.."

"나도 마찬가지야"



그의 차가 정해지고 나니 서류 문제가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리 부산에서 처리를 한다 해도 자동차의 소속이 서울이라 이 곳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주기적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샤는 자신의 동료들을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사샤의 주문이 늘어날수록 결국은 내가 부산까지 가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난 후, 이 거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던 나의 동선이 부산까지 넓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나의 세상은 조금씩 조금씩 나의 동선만큼 넓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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