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셔터문이 내려지는 순간....

도시는 적막감에 휩싸였다

by kseniya

밖의 풍경은 물건을 사러 이 곳 저곳 기웃거리는 러시아 상인들과 그들을 자기네 회사로 끌어들이기 위해 러시아 교포들이 떼 지어 그들 곁에서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느라 분주했다.

밖의 치열한 현장과는 달리 나의 공간은 바이어들의 오다를 받고 공장과 연결을 시키고 나면 조용한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한숨 돌리고 난 후, 커피를 마시며 그 날 들어올 물량을 확인하고 딜리버리가 잘 되었는지 머리로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바이어의 이름과 지역을 확실하게 외워 두는 것도 나의 일과 중 하나였다.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자국 소리가 멈추자 사무실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들어선다. 나는 예외 없이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이 지역 관할인 중부경찰서 형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 번 씩 이 곳을 기습적으로 순찰을 하는 중이었는데 뜻밖의 한국 사람인 나를 만나 무척이나 반가워하였다.

그 이후로 종종 이 지역을 들를 때마다 나의 사무실에 들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근무 중의 고단함을 나와의 수다로 한 숨 더는 것처럼 보였다.

형사가 나타나는 날이면 거리는 일단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이 되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들은 몸을 사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조심조심 사라졌다.

그들이 그렇게 몸을 사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일대에서 일하는 주로 사할린 출신의 러시아 교포들은 3개월짜리 관광비자로만 한국을 들어올 수 있었다.

관광비자는 말 그대로 일을 할 수 없는 비자였다. 즉 그들은 불법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만이 유일하게 그 일대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적법의 몸이었다. 그게 무슨 대수냐 싶지만 사실 신분이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서 제약이 따르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 간의 문제이긴 했지만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서 암묵적인 묵인하에 그들은 3개월마다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면서 불편한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 들어가는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그들을 고용하는 데는 그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였다.


중부 경찰서 형사가 이 곳에 자주 들르는 이우도 그 이유였던 것이다. 그는 그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불미스러운 사건이 하나라도 터지면 그것을 빌미로 그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형사는 그들에게는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그 무렵 나는 내 사촌인 사샤를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러시아 생활에서 내게 해 준 보답으로 나는 이 곳의 전망을 보고 그를 불러들였고, 그 후에 사샤는 이 곳에서 만난 사할린 처자와 결혼을 해서 이쁜 딸을 두고 살게 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기도 했다.

나는 지금 까지도 변하지 않는 인생의 모토인 나에게 도움이 되어준 사람에게 나 또한 도움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을 실천한 것이다.

그렇게 사샤 또한 내가 알아봐 준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그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중부경찰서 형사는 자신이 이 곳에 오게 된 연유를 올 때마다 나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조만간 불시에 일제히 검문을 할 거라고 나에게 넌지시 이야기해 주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들과는 서투른 교류를 하면서 그들 속으로는 잘 들어가지는 못 했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었고 나 또한 그들의 세계를 사샤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싹싹하고 사람 좋은 사샤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기 시작했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나름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그가 본 또 다른 세상.. 얼마나 흥미로웠을까?

러시아 시장은 밤이 되면 낮동안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오롯이 그들의 생활공간으로 바뀐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러시안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그들이 즐겨왔던 러시아식의 밤문화를 즐겼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던 그날..

중부경찰서 형사가 나타났다. 그런데 얼굴이 평상시의 얼굴과는 다르게 조금은 심각한듯한 표정이었다.

오늘 중으로 이 일대를 기습할 거라는 소리를 했다. 아마도 한 번씩 겁주기식으로 이런 식의 기습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태이고 맘만 먹으면 그 일대에서 보이는 러시아 교포들이 거의 다 100프로 불법취업자 들임에도 불구하고 잡을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잡지 않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경고성 비슷하게 멘트를 날리고 사라진 후에 나는 사샤를 통해 아무래도 경찰의 기습이 있을 것 같다고 조심하라고 일러주고 예의주시를 했다.

사샤는 발 빠르게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고 나의 언질이 있은 후 그 일대의 셔터문이 하나씩 닫히기 시작했다. 그들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고용한 고용주에게도 불통이 튀기 때문에 오너들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매 한 가지라 그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싶다.

셔터가 내려진 러시아 시장의 거리는 어제와는 다르게 고요한 적막감만 맴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배신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협력자가 된 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홀로 조금은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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