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거대한 물결은 소리 없이 다가온다

그렇게 나의 날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by kseniya

가볍지만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첫 출근을 했다. 첫 출근이라고 하기엔 나의 마음은 가벼운 아르바이트 정도로 여기었기에 그다지 큰 부담감은 없었다. 조금은 잠이 덜 깬듯한 느슨함으로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은 낯설었지만 조금이라도 나의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은 가벼웠다.

내가 일할 곳은 그저 그 밤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고요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쓰레기 더미들만이 그 밤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게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쓰레기 더미들을 눈으로 거쳐가며 내가 일할 곳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은 그 전날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 나를 맞아들였고, 나와 일단 말이 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뜬 것 같았다. 나는 첫날 첫 출근을 한 사람 치고는 여유도 있었고 전혀 떨리거나 그 흔한 초조함 조차도 없었다.

원래 간댕이가 크다는 소린 들었지만 아무래도 사회초년생이라기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적지 않은 나이도 거들지 않았나 싶었다.

나의 일과는 러시아 바이어들이 물건을 구입하러 오면 오더를 받고 그 오더를 다시 공장으로 주문을 하는 거였는데 , 그 당시 실정은 러시아 교포들이 러시아말은 잘했지만, 반대로 오너들과 한국말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그들이 뒤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문제들이 수면으로 올라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한국 오너들이 러시아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약점을 이용해 , 자신들의 바이어를 구축한 러시아 교포들은 이를 악용해 바이어를 빼돌려 몰래 커미션을 받고 다른 회사로 자신들의 바이어를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눈 뜨고 당하는 격이었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인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나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던 것이었다.

정확한 한국말의 소통은 러시아어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그 일을 이해하는 데는 불과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눈치도 빨랐지만 상황판단 또한 적절히 잘해나가는 그들에게 필요한 직원이었다.

그 결과 서서히 러시아 시장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나의 러시아 이름인 크세니아는 그 일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러시아 상인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 이유로 나를 찾기 시작한 나만의 바이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는 친절했지만 때론 그들보다 더 대차고 당당한 러시아말을 하는 한국 친구였다.

서서히 나는 그 일대의 유명한 친구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나의 당당함과 함께 몸값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러시아 시장에서 움직이는 달러는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러시아 사람들의 가죽 사랑은 실로 엄청났다. 유독 한국 가죽 시장의 염색기술이나 디자인을 엄청 좋아했다. 터어키의 무스탕과 함께 한국의 가죽옷에 대한 시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소위 말하는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는 이 사람들이 일주일마다 들고 오는 달러는 그 규모가 엄청났다.

위기의 시대에 달러의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러시아 시장은 그 시대의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나에게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발판이었다.

모스크바나 크라스나 야르스크 같은 대도시의 상인들은 일주일에 한 번 씩 주기적으로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일억 원 가치의 달러를 들고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했다.

내 눈으로 처음 보는 실물경제가 돌아가는 요지경의 세상이었다 그곳은........


그들에게는 각자의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역할을 러시아 교포들이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깡이나 강단이 없으면 그 경쟁에서 살아나기 힘든 구조였다. 그 안에 조그맣고 약할 것 같은 보통의 한국 여자인 나도 의도치 않았지만 그러나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과 나의 모호한 경계의 선... 이 선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었다.

넘어올 듯 넘어가지 못하는 그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같은 길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과는 다른 소위 말하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내가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그들보다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처해진 상황이 달랐던 것이다. 그와 다르게 또한 크세니아라는 사람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자신들에게 우호적이고 그들의 편에서 의리를 지킨다는 인식을 하게 됨으로써 그들식의 의리로 되갚아주는 나에게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어 준 사건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터지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