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도시는 예술작품입니다'
생태도시는 예술작품입니다.
「숨 쉬는 도시 꾸리찌바」안순혜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 별로 없다.
A는 잠시 도파민 농락에 빠진 정도였다. B는 사랑보다는 ‘좋아’가 어울렸다. C 따위에 사랑을 붙이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공연히 허들이 높아지니 줄줄이 탈락한다. 지천에 널린 게 사랑이지만 얄궂게도 쉽게 보지는 못한다. 착한 사람만 보이는 요사스러운 것 마냥 사랑을 느끼는 것도 복이다.
이럴 때 까탈스러운 성격이 진가를 발휘하고 마침내 ‘예술’이란 단어를 걸러낸다. 돌아서면 보고 싶고, 질투하고 선망하고, 가장 가까운 사이였다가 제일 먼 사이가 되어 버리고, 완벽하지 못한 마무리에 과거의 나를 탓하는 것도, 답 없는 주제로 밤새 수다를 떠는 것까지. 이 정도면 ‘예술’을 ‘사랑’한다 하겠다.
이름에 예술이 쓰인 학교를 다녔다. ‘살 수록 느그 아빠 속을 모르겠다’는 엄마처럼, 칠 년 가까운 시간, 예술을 더 모르게 됐다. 나는 전공 말고도 타 과 수업에 귀한 학점을 마구 투자했다.(경험은 좋은 거니까 투자라고 하자) 수강 신청을 성공하고 제일 설렌 조소 수업. 기계와 달리 흙은 만지는 행위만으로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자아가 있는 듯한 내 손 때문에 숨통이 도로 막혔다. 학기 말 과제로 방금 놀이터에서 만든 것 같은 대접 하나를 완성했다. 움푹 파여서 물건을 놓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다시는 빗살무늬토기는 무시하지 않겠어.
쓸모 있는 척하는 흙덩이를 들고 가마로 갔다. 가마 옆에는 소니 헤드셋을 무심히 머리에 얹고 나와 같은 흙덩이를 쓸모 이상의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전공생이 앉아있었다. 회장님 댁 거실로 모실 듯한 그녀의 흙덩이를 곁눈질하며 초라한 나의 흙덩이를 보이지 않게 품었다.
창작 무용 수업은 두 번이나 들었다. 맨 몸의 예술을 무엇인가. 무모하지만 호기심은 풀어야 했다. 예술에 (사랑에) 간접 경험이 어딨나. 덕분에 온몸으로 배웠다. 종아리, 등, 어깨, 겨드랑이까지 쥐가 나는 바람에 더불어 살던 근육의 존재를 확인했다. 맞은편 창문으로 보이는 전공생은 같은 근육으로 허공에 점을 찍고 선을 그어 작품을 만들었다. 즉각 탄생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예술이었다.
만약 예술가는 어떻게 생겼냐고 묻는다면, 닥터스트레인지처럼 양손으로 흙의 재주를 부리던 그녀와 머리카락과부터 발가락 털가락마저 아름답던 그를 말할 것이다.
좌우지간 사랑의 정체를 직시하고 직진하는 쿨한 그 녀석들이 부러웠다. 나는 헤맸기 때문이다. 미술사 수업 내내 본 미켈란 젤로의 작품보다 교실 밖 게시판을 채운 대자보가 더 예술 같았고,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버틴 예술 영화보다 대한 극장 밖 종로의 거리가 더 예술이었으며, 이십 분짜리 과제 영상보다 영상을 만드느라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한 시간이 더 예술이었다. 수확하는 정답보다 뿌리는 질문이 많아졌고 질문이 쌓일수록 조무래기처럼 짓눌려 작아졌다.
부유하는 사랑을 머금고 아이들을 만났다. 학원에서 아이들과 글을 읽는다. 아이들이 없으면 혼자 글을 쓴다. 사진도 찍고 피아노도 친다. 나는 선생일까 예술가일까. 무엇으로 불려도 찝찝했다. 선생이라기엔 전공이 아니고, 예술가라기엔 돈 받고 판 작품 하나 없다. 가르치며 돈을 버니까 선생이란 직업군에 속하겠지만, 아이들과 교감하며 얻는 충만함은 예술에 가깝다. 나는 아이의 말에서 관점을 얻고 아이는 나의 말에서 길을 찾는다. 우리는 함께 단어를 번역하고 탄생한 생각을 낭독하고 박수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이 충만함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엔잡러가 당연한 시대라지만 한 분야에서 이름을 날려야 정체성이 된다는 압박감이 무의식에서 방 빼지 않고 괴롭혔다. 직업의 자격과 삶의 자격을 동일시하니, 멈추지 않는 파도가 해변의 경계를 흐리듯 나의 정체성은 일렁거렸다.
‘생태도시는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책 <숨 쉬는 도시 꾸리찌바>한 구절이다. 이 책은 매연으로 가득했던 쿠리치바가 생태도시로 변하는 과정이 담겼다. 아이들은 ‘생태도시’와 ‘예술작품’이 나란히 놓인 모양이 의아하다. 나는 괜히 ‘예술’이란 단어에 처연해 버리려다 아이들의 힘으로 오래된 질문에 답을 챙길 잔꾀를 부린다.
“예술, 무엇이 떠올라요?”
"그림, 음악, 춤, 건축, 공연, 책, 그리고,, 게임?”
“어떤 기분인가요?”
“아름답고 황홀해요”
“감동적이에요”
“돈이 들지만 기분은 좋아요”
“마음이 치유되고 스트레스가 풀려요”
“자, 이번에는 생태도시를 떠올려봐요”
“푸릇푸릇 아름다워요”
“공기가 맑아 몸과 마음이 치유돼요”
“친환경적이라 마음이 놓여서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처음에는 돈이 들지만 효과는 오래 가요”
“다른 도시와 다르게 특별해요”
“아무 곳에나 있어도 기분이 좋아요”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은 두 개의 연결점을 유려하게 찾아낸다. 그리고 ‘예술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신비로운 것’이라는 정의를 만든다. 마당의 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굴리는 다리의 힘이, 페트병을 모아 재활용 공장으로 걸어가는 길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풀을 짓밟는 아스팔트, 자동차가 넘치는 도로, 페트병이 넘치는 도시는 예술과 거리가 멀다고 했다. 우리가 예술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도시에 살기 때문이라는 결론도 내렸다. 이내 나는 다른 의견이 떠올랐지만 그대로 두었다.
이력서를 내면 면접에서 꼭 받는 질문이 있다.
"다시 예술을 하고 싶진 않아요?" 직업인으로서 예술을 포기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안다.
부유하는 사랑이 언제 어디서나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이제는 쿨하게 대답한다.
직진하는 녀석들처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도,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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