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약물치료, 적응기 2주의 기록
약을 처음 입에 넣던 순간, 나는 두려움과 기대 사이에 서 있었다.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푸로작과 함께한 첫 2주의 기록이다.
# 세로토닌?
· 기분, 수면, 식욕, 충동 조절에 관여하는 뇌 신경전달물질
· 우울증 환자는 세로토닌의 양이나 수용체 기능이 떨어져 신호 전달이 약해져 있음
· 그래서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는 약(SSRI 등) 이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음
· 우울증은 세로토닌이 중요한 조절 스위치지만 전체 원인의 일부일 뿐으로, 도파민·노르아드레날린·뇌 회로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함
# SSRI ?
· 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 뇌에서 세로토닌이 신경세포로 다시 흡수되는 걸 막아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는 항우울제
· 우울증 환자는 세로토닌의 양이나 수용체 기능이 떨어져 신호 전달이 약해져 있어 세로토닌 농도를 높여줌
# 푸로작(푸록틴, 폭세틴) ?
· 성분명은 플루옥세틴(fluoxetine)
· 주요 적응증은 우울증, 강박장애, 공황장애, 불안장애, 폭식증, 생리전 증후군 등
·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억제해서 뇌 속 세로토닌을 증가시키고, 장기적으로 신경 회로를 안정화시켜 우울·불안·강박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
· 부작용으로는 소화불량, 불면(드물게 졸음), 두통, 식욕저하 등이 있을 수 있음
·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2~6주 시간이 필요
· 반감기가 길어서(2~4일, 대사산물은 더 길게) 복용을 중단해도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특징
· 약을 갑자기 끊으면 금단 증상(불안, 어지럼증, 감각 이상 등)이 생길 수 있어, 서서히 줄여야 함
# 덧붙여 비타민D, 햇빛과 우울증
· 비타민 D는 뇌에서 세로토닌을 만드는 효소를 조절해 세로토닌 합성에 중요한 역할
· 햇빛은 피부에서 비타민 D 합성을 촉진하고, 비타민 D는 뇌에서 세로토닌 생성에 관여해 기분 조절과 우울증 완화에 도움
· 비타민 D 부족은 세로토닌 저하와 연결되어 우울·무기력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음
· 우울증 약과 함께 개인적으로 비타민 D 영양제도 복용을 시작
# 4~5일째, 초기 부작용
진료를 마치고 처음 약을 먹은 오후.
곧바로 미친 듯이 잠이 쏟아졌다.
오후엔 심리 상담이 있었는데, 30분 정도 기절하듯 잠든 뒤 비몽사몽으로 다녀왔다. 상담은 늘 정신적인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키지만, 그날의 피곤함은 차원이 달랐다. 집에 돌아와 또다시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졸음은 계속됐다. 힘들었지만, 불면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던 내겐 ‘잠을 잘 잔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며칠 지나자 일하다 머리가 멍해지고 어지러운 증상이 종종 있었으며,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 4일째, 대학원 탈락
약을 복용한 지 나흘째, 대학원 서류전형 발표가 났다.
철저히 준비했고, 나름 하향 지원이라 생각했기에 당연히 합격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서류전형 탈락.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마음이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 절망이 몰려왔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큰 행사를 앞두고 있어 정신없이 바빠야 했고, 충분히 슬퍼할 겨를조차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상실감과 허탈감은 주중 내내 이어졌지만, 주말이 되자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매일 복용하던 푸로작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 효과
첫 정신과 약이라 궁금증이 많았다. 챗GPT 검색과 브런치, 블로그에서 치료기를 찾아 읽었다. 보통 4~6주 뒤에 효과가 나타난다는데, 나는 비교적 빨리 변화를 느꼈다.
· 잠들기 수월해지다
몇 년간 교대근무로 불면증을 얻었다. 교대근무를 그만둔 지 6년이 넘었지만 불면은 여전했고, 결국 직구로 멜라토닌을 사 먹지 않으면 잠들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심리상담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이상하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 덕분이었을까. 멜라토닌을 끊고도 잠이 왔다.
이어진 정신과 진료에서 항우울제를 복용한 뒤에는 졸음 부작용 탓에 미친 듯이 잠들곤 했다.
그리고 부작용이 차츰 사라지고 나자, 놀랍게도 자연스레 잠드는 법을 몸이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
· 수면의 질이 달라졌다
중간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자니 몸이 개운했다.
취침 시간도 예전의 새벽 1시 전후에서 밤 11시 전후로 앞당겨졌다.
덕분에 주말에도 늦게까지 늘어지게 자지 않고, 아무리 늦어도 오전 10시쯤이면 일어났다. 예전처럼 오후까지 자고 나서 느끼던 자책감도 사라졌다.
· 짜증·분노·화 감소
사소한 일에도 쉽게 올라오던 짜증과 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 부정적 사고 완화
부정적인 생각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 무기력의 개선
삶과 업무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직장에서 그렇다. 예전에는 직장에서 억지로 ‘가면’을 쓰고 빠릿빠릿한 척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나서야, 사실 직장에서도 무기력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약을 복용한 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해야 할 일이 생겨도 예전처럼 짜증이 치밀지 않았고, 먼저 나서 다른 사람을 도울 여유까지 생겼다.
· 감정 기복 완화
이전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던 기복이 줄어들었다.
# 여전한 증상들
· 우울·절망감의 선명함
약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자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울이나 절망감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아마 이전에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 자책감
업무 실수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사소한 말실수를 했다고 느끼면 여전히 자책감이 올라왔다.
· 식욕 변화 없음
의사는 푸로작이 식욕을 줄여 체중 증가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평소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고, 무기력으로 운동은 힘들어 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나로서는 은근히 이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식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짧다면 짧은 2주였지만, 내 삶에는 확실히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완전히 나아간 건 아니지만, 분명 한 걸음은 내디딘 듯하다.
이 여정을 이어가며 앞으로 내게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약물의 부작용을 이겨야 하는 게 살짝 걱정이 되면서도 또 기대되고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