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첫 정신과 진료
정신과 문을 두드리기까지, 마음속 수많은 망설임과 싸워야 했다.
# 안 좋았던 정신과 방문 기억, 치료를 주저하게 하다
우울증은 아니었지만, 살면서 정신과를 찾은 적은 몇 번 있었다.
십여 년 전 직장생활을 하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약 1년 동안 세 명의 정신과 의사를 만났는데,
진료비가 과도하게 비싸거나,
비꼬는 듯한 말투,
자신의 인지치료 방식만을 강요하는 태도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정신과에 대해 ‘그저 약만 처방해주는 곳, 더 상처를 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남았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대하는 의사들이 되레 함부로 말했던 기억이, 병원을 다시 찾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 다시, 용기 한스푼
그럼에도 다시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았다.
병원 선택 조건은 딱 세 가지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
여자 선생님이 계신 곳,
토요일 진료가 가능한 곳.
당장 진료를 볼 수 있는 먼 병원보다, 몇 주 기다려야 하더라도 오래 편안히 다닐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힘들었던 경험의 의사들이 모두 남자 선생님이였던 탓에, 이번에는 여성 선생님이라면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약 전화를 걸며 초진 비용을 물었다. 3만 원 정도라 했다. 다행히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 “전…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은데, 이것도 우울증인가요?”
첫 진료 날, 상담센터에서 받은 TCI, MMPI 결과지를 들고 갔다.
나는 우울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자꾸 혼자 있고 싶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싶어지고, 남의 말을 왜곡해 듣고 힘들어하며, 감정기복이 심하고 화, 짜증을 자주 낸다고 말씀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상담 선생님과 비슷한 의견을 주셨다.
“만성화되어 고착된 우울증이네요. 우울감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본인은 스스로 잘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우울증은 단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거나 ‘눈물이 난다’는 식의 전형적인 우울감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짜증이나 분노, 예민함으로 바뀌어 드러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왜곡해서 해석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피로감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흔한 증상입니다.
또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가 나고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지는데, 본인은 ‘내가 성격이 원래 예민해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오래 지속된 우울감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겁니다.
기분의 기복이 심하고, 스스로도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게 느끼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즉, 지금 겪고 계신 부정적인 생각, 예민함, 짜증과 분노, 그리고 관계 속에서 오는 피곤함까지 모두 우울증의 일부 증상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뿌리 깊게 자리잡아 자각하기 어렵지만, 치료를 통해 충분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가정사와 성장 환경, 직장 생활에 대해서도 물으셨다. 그리고 “약물치료가 꼭 필요하다”며 항우울제 푸로작 10mg을 처방해주셨다.
부정적인 생각은 ‘인지 왜곡’이라고 설명하시면서, 경우에 따라 추가 약물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인지 왜곡’이라는 표현은 내게 낯설고, 동시에 새롭게 다가왔다.
진료 전 우울증 관련 설문 검사 세 가지를 진행했고,
진료 시간은 10여 분 정도였다.
첫 처방은 푸로작 10mg 1일 1회.
초진 비용은 29,400원.(약값 포함)
다음 진료는 1주 후로 권유받았지만, 대학원 면접 일정이 겹쳐 2주 후로 잡았다.
그렇게 나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말 그대로 ‘정식’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