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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우울해보이지 않는데, 우울 수치가 너무 높네요

심리상담과 심리검사

by 공쩌리
7곳의 상담센터를 다녀본 끝에,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 2년간 꾸준히 다닌 곳


상담을 받은 이유는 단순했다.


짜증과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와 남편과 싸움이 잦아졌고, 자꾸만 혼자 있고 싶어지는 나.


그리고 여전히 버거운 직장 생활.


이런저런 삶의 무게에 지쳐, ‘나’를 좀 더 알아가고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저 “남들처럼 내 인생도 조금 버거운 것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


# 심리상담

심리상담 비용은 50분에 보통 7~10만원.
게다가 10회기 정도는 받아야 한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어서 늘 어딘가에서 지원을 받아야 했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었던 2년 전, 그때 받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총동원해 무려 21회기의 상담을 무료로 받았다.


휴직 기간에는 저렴한 수련 상담사가 있는 ‘오*지 카운슬러’와 동네 심리상담 카페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경험이 부족하고 서툰 상담사를 만나면, 오히려 내담자가 더 지치고 소진된다는 것을.


올해는 회사 지원으로 5회의 무료 상담을 받았고,


이후 8회는 ‘전국민 마음투자 사업’에 신청해 지원을 받았다. 절차는 간단했다. 먼저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우울증 설문지를 작성하고 의뢰서를 받은 뒤,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된다. 바우처로 사용할 ‘국민행복카드’는 미리 만들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자부담 금액은 소액인데, 나는 회당 14,000원 이었다.


# 심리검사

뭐가 문제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기 위해 심리검사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상담 지원에는 포함되지 않아, 별도로 10만 원을 지불해야 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라 망설여졌지만, 돌이켜보면, 검사를 통해 나의 상태를 정확히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MMPI, TCI, 문장완성검사 세 가지를 받았다. 검사지를 채우는 일은 예상보다 버거웠다. 어떤 문항은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고, 어떤 문항은 끝내 “잘 모르겠음”에 체크했다.


며칠 후, 상담실.

나는 선생님 맞은편에 앉아, 결과지가 놓인 테이블 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우울증 진단

선생님은 한 장의 도표를 내밀었다.

정상선 위로, 세 개의 막대가 가파르게 솟아 있었다.


“쉽게 말하면, 우울감이 상당히 높고(D, 우울),
사회 규범이나 권위에 피로감과 반감을 느끼는데 한마디로 화가 많고(Pd, 반사회적 경향),
대인관계에서는 극도로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상태(Si, 사회적 내향성)라는 뜻이에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에서는 지치고 불만이 쌓여 있을 수 있죠.


저도 결과를 보고 너무 놀랐어요. 2년만에 만난 OO님이 힘든 시간을 거친 후 휴직과 복직을 거쳐오며 밝아지신 것 같았는데, 이 정도로 우울하실 줄은... 아마 우울이 너무 오래돼서, 스스로 우울하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간 많이 억누르고, 혼자 감당해오신 것 같아요.


OO님 상태로는 상담 치료만으로는 부족해요.

정신과 약물 치료를 받기를 권유합니다.”


나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래프 속 숫자가 나를 완벽히 설명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마치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종이에 적힌 몇 개의 숫자가 들춰낸 기분이었다.


‘나는 멀쩡한데?’
‘그냥 조금 힘든 정도였는데?’


하지만 곱씹어보니,
늘 피곤했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지쳤으며,
좋아하던 것들조차 흥미를 잃었고,

밤마다 잠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왜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가끔 스쳤다.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됐다.

수십 번의 상담에도 여전히 삶이 힘들었던 이유.
같은 상황에서도 남들보다 더 버겁고 지쳤던 이유.

나는 생각보다 오래, 깊이, 아팠던 것이다.



2년이라는 긴 시간, 지치고 힘든 삶의 길목마다 상담 선생님은 늘 나와 함께해주셨다.
상담 덕분에 나는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선생님은 상담뿐 아니라 약물 치료도 함께 받아야 할 것 같다고 권유하셨다.
두려움과 거부감이 컸지만, 강력한 권유 앞에서 나는 마침내 그 길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다.
조금이라도 삶이 나아지기를.


그날, 나는 오래 미뤄온 용기를 꺼냈다.


정신과에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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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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