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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나의 자살사고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온다

치료 6주, 다 내려놓고 싶어...

by 공쩌리
나카시마 미카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나카시마 미카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괭이갈매기가 부두에서 울었으니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생일에 살구꽃이 피었으니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구두끈이 풀렸으니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차가운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 우울증이 시작된 이유

어린 시절 불행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지만,

성인이 된 된후 집을 나와 나만의 행복을 찾았다.

대학생활, 사기업 6년 재직까지 모두 원만하게 해냈다.


그리고 더 큰 행복을 꿈꾸며 도전한 공무원 시험.

합격 후 찾아온 건 우울증이었다.


경직된 조직문화와 폐쇄적인 공직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매일 나 자신을 몰아세우다 자살의 문턱까지 갔고,


가까스로 질병 휴직을 했지만 8개월간 칩거하며 깊은 수렁에 빠졌다.


복직 후에도 원인 모를 삶의 무게에 짓눌려 상담센터를 찾았다.


# 공무원 조직의 폐단

공무원 사회에는 일을 가르쳐주는 ‘사수’라는 개념이 없다.

모든 걸 혼자 부딪치며 배워야 한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싫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알려주더라도 불친절하다.

물론 친분이 있는 사이에서는 예외다.


아무런 연고 없는 비연고지,

게다가 내성적이고 붙임성 없는 나는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쌓인 상처가 결국 우울증으로 터져 나왔다.


# 죽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사소한 데서 왔다

조금은 일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일은 찾아왔다.


공무원 조직에서 가장 많이 듣는말이 "전임자 자료 찾아봐라" 이다.

그만큼 일을 가르쳐 주는데 박하고, 혼자 전전긍긍 알아보며 해결해야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그만큼 또 많이 듣는 말이 "물어보면서 해라"이다.

이 둘의 접점은 대체 어디쯤일까?


무튼 혼자서도 열심히 찾아보며 알아보고,

혹시 몰라 민망함을 무릅쓰고 전화로 여기저기 물어봐가며

간신히 공문을 올렸다.


그런데 과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이렇게 일을 하냐? 결재 못한다. 과 서무에게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라고 해라.”


그 순간,

수치심과 자괴감, 굴욕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밀려왔다.

버겁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만두고 싶다.

아, 죽으면 편해질까.

편해지고 싶다...


# 다른 사람의 평가가 곧 나의 본질

나는 늘 ‘나 자체’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누군가 나를 단단히 믿어주고 사랑해주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온전한 부모가 있었다면, 이런 일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존재의 본질까지 훼손되는 느낌이 들어 견디기 어렵다.


# 처음으로 꺼낸 필요시 안정제

퇴근을 했는데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올라와 너무 힘들었다.


결국 ‘필요시 복용’이라고 처방받은 안정제를 처음으로 꺼내 먹었다.


# 무심한 한 마디, 큰 상처

무기력이 몰려왔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산책을 나섰다.


평소와 다른 산책코스인 숲길에 들어서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저 끝에 작은 절이 보였다.

가끔 절에 들르면 마음이 고요해지곤 했기에,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그런데 절에서 일하는 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왜 오셨어요?”


방금까지 회복되던 마음이 다시 무너졌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나왔다.


# 조계사와 동네 절

문득 조계사가 떠올랐다.

그곳은 언제든 문이 열려 있고, 누구든 자유롭게 드나든다.

사람이 많은 번화가가 주는 익명성, 그 열린 분위기가 위안이 되었었다.


오늘 동네 작은 절에서의 경험은 내가 일하는 작은 지자체의 폐쇄성과 닮아 있었다.

작은 일상의 사건에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 위로가 필요해

우연히 인터넷에서 불행한 인생을 살아온 소녀의 기사를 읽었다.

그런데 순간,

남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는 모습이 못나고, 미웠다. 내가 싫고, 혐오스러웠다.


잠이 안와 티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일본 드라마 〈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병 때문에 전일제 일을 하지 못하는 여성이 파트타임으로 살아가며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나는 직장 때문에 우울증이 온건지,

우울증에 취약한 내 성향때문에 이 조직에 적응을 못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드라마 주인공의 힘든 상황이 어쩐지 나와 비슷해보여 위로가 되었다.


# 몸이 아프다, 신체화 증상일까?

‘신체화’란 심리적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저번주부터 편도선염으로 약을 먹었다.


조금 호전되더니,

자살사고 위기를 겪은 뒤 다시 악화됐다.


병원을 가니 역시나. 더 심해졌다고 했다.

스트레스 때문일까.


주말마다 늘 여기저기 병원 투어를 다니며까지

이 직장에서 버티는 게 맞나 회의감이 든다.


# 노력

다 그만두고 싶다.

주말 내내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아침,

처음으로 아침 운동을 했다. 산에 오르며 땀을 흘리니 뿌듯했다.

집안일을 하며 작은 성취감을 느끼려 애썼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기력은 여전했다.


‘내가 과연 이직을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따라오고,

곧 절망이 찾아온다.


아, 다 그만두고 싶다.

또 죽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나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다만 꼭 필요할 때 구급상비약처럼 듣기 위해 늘 멜론은 정기 결제한다.


오늘은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 필요했다.


“사랑받고 싶다며 울고 있는 건

사람의 따뜻함을 알아버렸으니까

죽는 것만 생각하고 마는 건

분명 사는 것에 너무 진지하니까…”


가사에 마음이 겹쳐졌다.


내일은 또 지옥 같은 출근이 기다린다.

내 실수를 아는 사람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게 괴롭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듣고,

이렇게 글을 쓰며 마음을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위로가 된다.


다음 주는 정신과 진료일이다.

기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다가온다.

치료를 시작하길 잘했다.


부디, 다음 주는 지금보다 덜 힘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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