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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힘들어요... 벽돌성이 되고싶은 모래성

세번째 진료, 항우울제 증량 및 수면제·안정제 처방

by 공쩌리



우울증 치료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 같다.


분명히 나아지는 중인데도, 불시에 찾아오는 파도에 휩쓸리곤 한다.


치료를 시작하며 분명 나아진 부분이 있었지만, 직장생활이라는 벽 앞에서 또다시 무너졌다.


# 항우울제 증량

다행히 다음날은 정신과 진료일이었다.

치료를 시작한 뒤,

-감정기복과 예민함이 줄어들고

-작은 타격에도 덜 흔들리며

-일상 속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렇게 좋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진료 이틀 전부터 회사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사무실에서 모두 앞에서 오열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진료실에서는 눈물이 글썽이긴 했지만 다행히 울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복용 중이던 항우울제 푸록틴을 10mg에서 20mg으로 증량해 주셨다.


# 필요시 수면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거나 중요한 행사를 앞두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마침 멜라토닌 직구약도 다 떨어져서, 멜라토닌 2mg 30일치를 처방받았다.

직구 제품은 효과가 3시간가량인데, 처방약은 8시간 효과가 지속된다고 한다. 처음 알았다.

또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자나팜 0.25mg 14일치도 함께 처방받았다.


# 필요시 안정제

어제처럼 감정이 폭발할 때를 대비해 안정제도 요청했다.

인데놀 10mg, 자나팜 0.125mg 7일치.

3포는 회사에, 2포는 가방에, 2포는 집에 나누어 두었다.


# 의사 선생님이 본 내가 힘든 이유

선생님은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은 내가 스트레스에 특히 취약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예전 직장은 적성이 맞아 5년간 버틸 수 있었지만, 공무원이 된 뒤 숨 막히는 조직문화와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 속에서 우울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휴직 중 8개월을 집에서 칩거하다 보니 뇌의 신경전달물질에도 불균형이 생겼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라도 치료를 시작한 건 정말 다행이었다.


# 다시 일상, 후유증

사무실에서 펑펑 울었던 사건 이후, 약을 증량했지만 효과는 즉각 나타나지 않았다. 여파가 이어졌다.

증량 초기 이틀간은 졸음이 있었지만 주말이라 다행이었고, 금세 적응했다.


무기력과 피로가 이어졌지만 작은 집안일 정도는 해낼 수 있었다.


다만, 한동안 없던 부정적 사고가 다시 올라왔고, 타인의 반응에 예민해져 왜곡해서 받아들이며 상처를 받았다.


심한 악몽을 꾸고 가위에도 눌렸다.


몸무게는 일주일 새 4kg이나 늘었다. 운동을 거의 못 하고 폭식했기 때문이다.


# 항우울제의 새로운 부작용, 감정 둔화

최근 들어 깨달은 변화가 있다. 감정의 파도가 잦아든 대신, 마음의 결이 한 겹 두꺼워진 듯 무뎌졌다.

찾아보니 푸록틴은 평정심을 지켜주는 약이라 한다. 덕분에 슬픔은 옅어졌지만, 그와 함께 기쁨이나 감동도 예전처럼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른바 '감정 둔화' 였다.



평화로운 일상에서 우울증 환자임에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사건들은 나를 흔들었고, 결국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남들보다 스트레스에 더 취약한 나는, 파도에 쉽게 무너지는 모래성 같았다.
언젠가 단단한 벽돌성이 될 수 있을까?


아직 확신은 없지만,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과,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붙들고 버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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