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2024년, 우연히 시작한 짧은 명상은 아무 효과도 보지 못한 채 끝났다. 자살사고는 점점 더 짙어졌고, 결국 휴직 중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진짜 사직서를 내고 나니 달라졌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숨이 쉬어졌다. 용기가 생긴 것이다. 며칠 뒤 사직 철회서를 제출했고, 복직했다.
2025년, 공무원 생활은 여전히 적응 49%와 부적응 51%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였다. 아직 신입이나 다름없는 내가 팀의 큰 행사를 맡게 되었다. 예산도, 나의 능력치도 턱없이 부족한 총체적 난국이었다. 한 달 동안 약속도, 집안일도, 운동도, 독서도 모두 멈췄다. 일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지독한 번아웃이 찾아왔다.
무기력.
퇴근 후 집에 오면 씻을 힘조차 없어 몇 시간을 소파에 누워만 있다, 밤 열두 시가 되어야 겨우 몸을 일으켜 씻는게 가장 큰 과업이었다. 그마저 못씻고 잔 날들도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엉뚱한 곳으로 이끌었다.
'미니멀라이프'
나는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런데 왜 하필 미니멀라이프였을까. 유튜브도 내가 안쓰러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것인가. 그 우연한 만남이 나를 180도 돌려놓았다.
갑자기 마음이 설렜다.
닥치는 대로 영상을 찾아봤고, 관련 책을 스무 권이나 읽었다.
집 안을 뒤집기 시작했다.
85리터 쓰레기봉투와 코스트코 타포린 백을 꺼내 눈에 띄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담았다.
맥시멀리스트인 남편은 평소 작은 것 하나 버리는 것도 질색하며 “언젠가는 쓸 거야”라며 쌓아둔다.
다행히(!) 주말에도 일하는 남편이 나가면, 그때부터 은밀한 작업이 시작된다.
낮이고 밤이고 없었다. 남편이 야간근무인 날은 새벽 3~4시, 헌옷 수거함에 옷을 채워넣고 재활용과 쓰레기를 나르다 밤을 꼴딱 새운 적도 있었다.
매주 주말 이틀씩, 4주 동안.
- 십여 년째 “살 빼면 입어야지” 하며 못 입고 있던 옷 100여벌
- 일반 쓰레기 85리터 봉투 6개
- 재활용 85리터 봉투 3개
- 음식물 쓰레기 60리터
- 책 30권
- 소품 50리터
- 소형 가전 7개
- 졸업사진은 우리과 친구들만 남기고 찢어버렸다
부피가 1/3로 줄었다
- 인연이 끝난 친구들과의 편지, 학창시절 자잘한
쪽지들, 비슷비슷한 사진들...
- 손절한 친구와의 우정반지, 안쓰는 피어싱,
살이 쪄 꽉 끼는 목걸이까지...
1톤 트럭 1/3 정도의 양을 버린 것이다.
쇼츠도, 릴스도 아니다.
이게 진짜 도파민이었다.
집는다.
잠시 생각한다.
버린다.
그 단순한 반복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새것 같은 물건을 버리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찾아보니 '아름다운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돈이 될 만한 것들은 채소마켓에 올렸다.
그리고 책은 중고서점에 팔았다.
집을 비우며 즉각적이고 확실한 성취감을 느꼈다.
기부 하러, 중고 거래를 하러 나가야했다.
'직장-집' 반복 궤도를 벗어났다.
자차 출근러기에 대중교통을 타지 않던 내가 중고서점을 가기 위해 버스, 지하철을 탔다.
버스를 타고 세상 밖 낯선 풍경들을 접한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짧은 대화을 나눴다.
무기력에 시달리던 내가 말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한달 간 1톤 트럭 절반 가까이의 양을 비워냈다.
엄청나게 많은 양 임에도, 물건 대부분이 집 구석 구석에 숨겨져 쌓여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수납공간이 조금 여유로워진 것 뿐,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남편도 그저 물건 몇개 버렸다고 생각하지, 저렇게 많은 양일줄은 모른다. 얼마나 많이 불필요한걸 쌓아놓고 살았던걸까?
이제는 달라졌다.
더 버릴 것이 없어졌을 때,
물건이 줄어 넓어진 집과 내 맘의 공간,
쇼핑을 멈추자 생겨난 공백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미니멀리스트들은
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삶을 다시 정의하는 사람들이었다.
버리고, 나누고, 덜어내는 일은 내게 수행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다시 명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