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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욱 Feb 07. 2021

유틸리티(다용도) 나이프

칼 카테고리 설명

 나는 ‘다용도’라고 분류된 주방용품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 보통 전체적의 능력이 애매한 제품들을 다용도라고 좋게 포장한 후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용도’라는 이름을 걸고 화려한 광고와 함께 출시된 주방 기구들을 몇 번 사용해봤지만 사용할 때마다 구매에 대한 후회와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용도 제품에 내린 결론은 ‘실제 능력이 아닌 마케팅에 의한 포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틸리티 나이프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 얇은 두께의 쉐프나이프로 작업하는 것을 더욱 선호한다. 하지만 필요성을 물어본다면 '상황에 따라서 꼭 필요하다'고 대답한다.

 


다용도 조리도구? 마케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님


 이해하기 쉽게 팬으로 생각해보자. 구글 등에서 ‘다용도 팬’ ‘만능팬’ 등으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나오는 팬의 이미지는 천차만별이다. 적어도 2011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다용도팬’에 대해 어떤 디자인, 사이즈, 강재가 어울리는지 제대로 정착이 안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판매자는 단순히 제품의 스펙에 맞추어 유리한 점만 나열한 후 다용도 팬이라는 주장을 한다. 모든 음식이 다 맛나게 나오게 만들어 주는 다용도 팬이 존재할수가 있을까?



출처: 구글이미지) 검색만 해봐도 상상조차 못했던 팬들이 이미지로 보인다. 이미지가 중구난방이다. 다용도 팬이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유틸리티 나이프란?


 그런데 칼의 경우는 다르다. 유틸리티 나이프(utility knife)라는 카테고리가 당당하게 존재한다. 다용도 칼이라는 의미이고 15cm 가량의 일반 부엌칼보다 작은 칼날 사이즈를 가진다. 양식 요리사들에게 유틸리티 나이프에 대해 물어보면 그 모양과 필요성에 대해 유사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출처: knivesandstones) 칼의 카테고리에 당당히 한쪽을 차지한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쉐프나이프 - 유틸리티 - 스지히끼 순으로 분류되어 있다.

 

 나의 첫 업장은 프렌치 비스트로(간단한 음식을 판매)였다. 업장에서 내 칼을 길이는 27cm로 일반적인 도마보다 더 긴 칼이었다. 일반적인 요리사가 요리를 시작하는 경우보다 훨씬 긴 사이즈의  칼에 익숙해지면서 일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 궁금증이 생겨 해외 사이트에서 칼 검색하는데 15cm 칼이 다용도라고 나오니 지금까지 쌓아왔던 경험으로는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27cm로도 사과 깎고 딸기 자르고 다 하는데 15cm로 어떤 작업을 한다는 거지? 왜 저 칼이 다용도이지? 과도도 아니고 쉐프나이프도 아닌 것이 사이즈가 너무 애매한데?'


출처: 구글이미지) 유틸리티 나이프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칼의 종류들. 사이즈가 대부분 15cm 이다.



 실제로 첫 구매를 했을 때도 실사용 후 '도대체 이 칼로 무슨 다용도 작업을 한다는 거야? 당근 등을 썰기에는 힘이 부족해서 손목이 아프고, 과일 등을 썰기에는 과도가 훨씬 편하고...'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유틸리티 나이프가 어울리는 요리는?


 막상 미슐랭급 레스토랑에서 일할 기회가 생기니 왜 저 칼이 다용도 칼로 분류되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보통 많은 요리사들이 처음에 경력을 쌓을 때는 ‘가드 망제’라는 찬 요리 코너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코너의 일이 만만치 않게 오밀조밀하다.

 매일 허브 따고 핀셋으로 올리고 버터를 자르고 채소를 0.3cm 사이즈로 재단하다 보면 하루가 간다. 자르는 사이즈가 cm 단위가 아니라 mm 단위로 구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를 대고 사이즈를 제단 하여 작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세밀한 작업에 일반적인 쉐프나이프 사이즈의 칼은 불편하다.

각 재료를 정사각 모양으로 세밀하게 잘라서 놓은 요리에는 유틸리티 나이프가 보다 편하게 작업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10cm)를 사용하기에는 편하긴 하지만 너무 칼날이 작아서 한 번에 작업할 수 있는 상황에서 두 번 칼질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쉐프나이프의 역할과 과도의 역할이 동시에 가능한 유틸리티 나이프를 사용하면 최고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21cm 쉐프나이프의 기능과 10cm 과도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다용도(utility)’ 나이프가 되는 것이다.


 직원 중 유틸리티 나이프만 사용하는 직원이 있었다. 사이즈상 더 큰 칼을 이용하면 편리할 것 같은데 본인은 유틸리티 나이프를 사용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하였다. 나중에 4kg가량 되는 큰 수박을 유틸리티 나이프 하나로 해체하는 걸 보면서 ‘사람마다 편한 사이즈가 있는 거구나’하는 깨달음과 동시에 ‘저런 식으로 사용하면 정말 다용도 칼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운데가 유틸리티 나이프이다. 잘 보면 손잡이의 크기는 왼쪽의 과도만한데 칼날의 길이는 오른쪽의 쉐프나이프보다 조금 못하다. 과도와 쉐프나이프의 하이브리드라고 보면 된다.



유틸리티 나이프를 사용해야 하는 사람


 양식을 배우러 해외에 혈혈단신으로 나가서 일할 생각이 있는데 한 자루의 칼만 사야 한다면 무조건 구매해야 한다. 파인 다이닝급 레스토랑에서 열정을 다해 일할 생각이 있다면 구매한다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케쥬얼 다이닝에서 일한다면 사용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적어도 나라면 굳이 사용하지 않을 것 같다. 일반적인 가정에서 한식 요리를 주로 한다면 굳이 구매할 필요는 없다. 가정에서 많이 써는 당근, 무, 파 등을 썰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하고, 결정적으로  가정에서는 18-21cm 부엌칼과 과도 하나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분명 다용도 칼이긴 하지만 서양 식단 위주의 경우에만 다용도 칼이다. 한국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자재나 만들어야 하는 요리를 생각해보면 ‘다용도’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전문적인 레스토랑과 가정에서 사용빈도가 가장 많이 차이가 나는 몇 안 되는 나이프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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