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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OVICH Oct 07. 2021

<청담동 물고기> #2

해석 오류



이제 생김새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리에 들어섰다.

호감을 가질 만한 귀여운 얼굴이었다.

안경과 흐트러진 머리 때문에 면식이 있는 사람인지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오른쪽 귀에 까만 피어싱까지 분명히 눈에 들어올만한 거리에 이르렀고 그 둘은 같은 몸짓으로 손을 내밀며 대칭을 이루어 마주 서 있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으려는가..'

K는 생각했다.


K의 손이 조금 더 속도를 내며 그녀에게로 다가서고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이 아닌 손을 향해 있었다. 아직까지 어떤 접촉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그 촉감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아는 사람인가..?'

물음이 계속 진행되고 두 손이 맞닿기 직전, 흠칫 걸음을 멈추고 뒤로 반보쯤 물러난 여자가 K를 잠깐 응시 한 뒤 K의 등 뒤에 다가오던 택시로 움켜쥔 손 안에서 모래가 쏟아지듯 둘만의 공간을 빠져나갔다.


한쪽면이 이탈되며 데칼코마니가 어긋나고 K를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 그녀가 탄 택시도 청담동을 떠나가고, 이 잠깐의 기묘한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리둥절해하며 홀로 남겨진 자신의 오른손을 응시하는 K였다.


우두커니 선채로 상황을 정리해 보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결론이 답으로 떠올랐다.

정답을 알고도 당당히 버저를 누를 수 없는 그 딜레마.


그냥 택시를 잡으려는 낯선 여자의 일상적 행동에 비일상적으로 마음을 활짝 열었던 것이다.


착잡한 심정으로 몇 걸음 걸어 자신의 차에 탔다.

물리적으로 어떤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던 조금 전의 상황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와 토사물로 엉망이 된 금요일 새벽 홍대 거리 같은 폐허로 자신을 몰아넣었다.


"뭐야.. 나 외로워..?"


나직이 읊조리다 저항할 수 없이 밀려오는 수치스러움에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뭔 짓을 한 거야 이 병신아~!!"


무엇보다 그녀에게 위협적, 혹 변태적으로 보였을지 모를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이럴 것이다.

"택시 잡으려는데 웬 미친놈이 쑥 나타나더니 손을 내밀잖아. 얼굴 보니까 요새 동네에 왔다 갔다 하는 거 몇 번 본거 같은데 아이씨, 아침부터 재수 없게! "


하루 동안 만나는 이들에게 K의 인상을 가장 적대적으로 묘사했을 것만 같았다.


그녀를 따라가 나는 당신이 먼저 내게 보내온 심오한 싸인을 다정하게 해석한 죄 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그쪽이 아니었냐고 그리고 우리에게 어떠한 접촉도 없었음을, 그러니 나에 대한 오해를 접고 소중한 당신의 오늘을 망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었다.


그날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퇴근 후 오피스텔에 돌아와서도, 그 하루가 저물어 가기까지도 그녀의 작은 손짓과 자신을 스쳐갔던 시선은 K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초도 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었으니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의 인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위태로운 확신으로 침대 위로 몸을 옮기면서도 평소처럼 커피 한잔을 테이크 아웃하려고 늘 가던 카페 들렀다면 그녀를 마주치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끝까지 그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왜 그녀에게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을까, 그녀는 왜 그리 가냘픈 손 모양으로 나를 부르 듯 택시를 향해 손짓했을까.. 끝을 맺지 못하는 물음으로 내내 심란했다.


그녀가 보낸 신호에 적절한 응답을 한 것이지 자신의 대응은 결코 멍청하고 볼썽사나운 헛짓거리가 아니었음을 어딘가에는 증명해야만 이 무자비한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면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K는 자신이 밤새 뒤척일 것임을 예감하며 평소처럼 수면 안대를 착용하고 잠을 청했다.




K는 이혼을 했다.

2년도 되지 못한 짧은 결혼 생활이었다.

전처가 키우고 있는 딸아이도 하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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