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명명식의 역사
왜 새로 건조된 선박에 샴페인병을 깨는 것일까?
먼저 이 이유를 알기 위해선 먼저 선박에서 거행되는 여러 행사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 가게가 오픈하면 개업식을 열고, 새 브랜드가 탄생하면 론칭쇼나 이벤트를 열듯 새 선박이 건조되면 론칭 세리머니가 열린다.
한국어로는 진수식(進水式), 영어로는 Ship Launching ceremony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건조 이후부터 폐선이 될 때까지 선생(船生: 선박의 生)에 있어 단 한번 거행되는 행사이자,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행사이다.
선박업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선박 명명식, 선박 세례식이라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이 행사들이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다른지?' 하고 말이다.
명명식(命名式: Naming Ceremony)라고 하는 행사는 문자 그대로 이름을 지어주는 행사이다. 이 행사를 통해 '오늘부터 이 크루즈선을 '00000호'라고 공식적으로 명명한다.'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보통 이 명명식은 크루즈선의 대모(God mother) 혹은 선사에서 선정한 인사가 발표를 한다.
세례식 (洗禮式: Ship Christening, 혹은 Baptism of the ship)이라고 불리는 행사는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행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들어온 세례식은 그리스도교에서 행해지는 하나의 중요한 의식, 즉 그리스도교인이 되는 첫 성사( 聖事)로서 이 세례식을 통해 죄 사함을 받으며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신비체의 일원으로서 그분의 정신을 따라 살게 됨을 뜻한다. 하지만 선박에서는 이 와는 조금 다른 의미다. 옛 선원들은 악천후를 가장 두려워했다. 자연은 인간들이 컨트롤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원들은 새 선박의 항해를 앞두고 선원들의 무사안전과 신의 가호를 있기를 기도하는 의식을 올렸고, 이것이 선박의 세례식이 되었다.
이러한 명명식, 세례식 이 모든 행사들을 통틀어 “진수식(進水式: Ship Launching ceremony)”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례식의 기원이 오늘날 선박에 샴페인병을 깨는 것과 연관이 있다.
고대시대 새 선박의 항해를 앞두고 여러 민족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의식, 제사를 지냈다. 옛 그리스인들은 올리브 가지로 만든 화환을 머리에 쓰고, 신에게 공경을 표시하는 의미로 와인을 마시고, 물을 새 선박에 부으며 선원들의 무사안전과 신의 가호를 있기를 기도하는 의식을 올렸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인들은 소를 제물로 바쳤었고, 살아 있는 양을 배 밖으로 던지는 의식을 치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동물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바이킹족은 노예와 포로들을 신의 제물로 이용하였고, 인간을 선박이 지나가는 길목에 눕혀 선체가 사람들을 위를 지나며 바다로 입수하는 무시무시한 인신공양을 치렀던 것이다.
이러했던 의식, 아니 악습들은 후에 기독교인들에 의해 규탄받고, 기독교의 영향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동물, 사람을 공양으로 올리던 악습은 대신 사람의 피와 희생을 상징하는 와인으로 대체되었고, 선원 대신 실제로 수도사들이 선박에 올라 돛에 손을 대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선박의 선두와 갑판에 성수를 뿌리며 의식을 행했다. 하지만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 이후, 선박의 의식에도 종교적인 성향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특히 영국에서는 왕족, 귀족이 수도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후 몇몇 영국의 왕족, 귀족이 선박에 올라 세례식을 치르면서 '스텐딩 컵(Standing Cup)'이라고 불리는 유리나 금속으로 된 값비싼 포도주잔(Goblet)에 술을 따른 후, 신성한 마음으로 선박의 이름을 선포하였다. 그러고 나서 스텐딩 컵에 따라진 술을 마시고, 선박의 무사고를 기원하며 남은 와인은 갑판 혹은 선두에 붓고, 선박에 잔을 부딪히거나, 배 밖으로 던지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점차 영국의 해상세력이 커지고, 군함도 늘어남에 따라 의식의 횟수도 늘어났고, 비싼 포도주잔을 사용해야 하는 의식이 유리잔, 유리병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식의 형태가 점차적으로 변화하며 오늘날 샴페인병을 선두에 부딪혀 깨부수는 형태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샴페인병일까?
서두에도 언급한 바처럼 그리스인들은 물을, 중세시대에는 성수, 물, 와인을 사용했다. 그리고 과거 기록을 보면 1797년 USS Constitution을 론칭할 때도 와인병을 선두에 부딪혀 깼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정확히 어떤 액체라고는 기록이 안되어있지만 “신성한 액체 Christening Fluid를 뿌리거나 깼다.”라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위스키, 브랜디가 신성한 액체로서 의미를 가지기도 했고, 오렌지 주스를 사용했다고도 하니, 그 신성한 액체는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정해진 것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 보니 '오늘날 왜 샴페인이 신성한 액체가 되었는지, 아님 대부분의 선사들이 선호하는 액체가 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는 없다. 하지만 1890년 철로 만든 첫 해군 전함, 선박 USS Maine의 론칭 세리머니에서 샴페인을 신성한 액체로 사용한 기록을 보며, 아마 당시 사용했던 특정 스파클링 와인이 철의 새 시대 탄생과 의미적으로 연결이 되었던 것은 아닌지, 혹은 단순히 그 당시 시대의 유행상 힘을 의미하는 철과 품격을 의미하는 샴페인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닌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크루즈 선사들은 샴페인을 사용한다. 개인적으로는 샴페인의 엘레강스함과 크루즈의 화려함이 잘 맞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님 과거엔 금속으로 된 고급 포도주잔을 사용했던 것처럼, 고급 와인의 상징이라고 하는 샴페인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아님 일반 와인병보다는 깨지기 어려운 샴페인병을 깸으로써 “안전히 항해할 수 있겠다”라는 믿음을 더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선박 론칭 세리머니의 형태는 조금씩 변해왔고, 오늘날 특정 선사에서는 16세기에 거행했던 의식을 다시 살려 신부(사제)님을 모셔와 선박의 무사와 선원, 승객의 안전을 기도하는 것처럼 과거의 형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의식의 형태, 스타일은 변화하고, 또 본래의 형태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의식의 의미는 과거나, 현재나 그리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선박에 승선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이라는 의미 말이다. 한 선박이 탄생하고 죽기까지 자연의 은총을 받고, 신의 은총을 받아 안전하게 승객들과 선원들을 태우고 항해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 말이다.
크루즈뿐만 아니라 모든 선박에 승선한 사람들에게 무사와 안전을 기도한다. 그리고 지금 배 위에서 근무하거나, 여행 중인 사람이 있다면 바다를 딛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자연과 그리고 선박에게 감사함을 느꼈으면 한다.
@Written by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