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부동산
2주 전 영화 <다운사이징>을 보았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결말 스포 있음)
주인공 폴(맷 데이먼) 은 평생을 같은 집에 살면서 10년째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때우며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아내의 유일한 소원인 더 넓은 집을 갖는 것도 대출 조건이 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던 중 인구과잉이 가져다주는 환경문제, 사회/경제문제 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간 축소 프로젝트인 다운사이징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이 기술은 단순히 부피를 0.0364%로 축소시키고 무게도 2744분의 1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1억 원의 재산이 120억 원의 가치가 되어 왕처럼 살 수 있는 기회도 준다. 화려한 삶을 그리며 폴과 아내는 다운사이징을 선택하지만, 시술을 마친 폴은 아내가 가족의 곁을 떠나기 싫어 다운사이징된 자신을 두고 도망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다운사이징된 사람들이 부유한 삶을 누리며 사는 단지로 이동한 폴은 커다란 저택, 경제적인 여유, 꿈꾸던 럭셔리 라이프를 살아가지만 이혼 후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 버린다. 하지만 그곳에서 폴과 정반대로 걱정, 미련 없이 여유를 보내는 욜로 라이프를 사는 두샨, 그리고 두샨의 저택을 청소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하지만 동시에 사회 정의도 구현하고 사는 녹란을 만나며 폴은 자신의 삶에서 진짜 원하는 일, 행복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녹란과의 만남은 최초 다운사이징을 연구하고 개발한 박사와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폴과 녹란은 박사의 연구와 길을 따라 다운사이징되어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최초 다운사이징 민족,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은 박사가 비록 다운사이징을 개발하여 전파하였지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문제, 사회문제에 통탄하며 앞으로의 세상은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다운사이징된 사람들 만이 사는 세계였다. 11시간을 부지런히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지하세계에 다운사이징된 민족들이 번영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하세계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폴은 고민을 하지만, 결국 포기를 하고 녹란과 현세상에 남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내용보다는 다운사이징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 그 커뮤니티의 형태에 더 주목했다. 다운사이징 커뮤니티를 보면서 크루즈 안의 세상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크루즈 안을 아파트 단지로 가끔 비유를 하기도 하지만, 정말 한 도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크루즈 안의 승객들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건 물론이며, 오락과 문화생활을 즐기고, 사람들과의 교류, 즉 사회생활도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요즘 같이 인터넷으로도 쉽게 업무를 보는 세상에서는 크루즈 안에서 경제활동도 가능하다.
로열캐리비안 인터내셔널 에는 아주 유명한 승객이 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승무원이라도, ‘슈퍼마리오’라는 닉네임을 한 번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승객이다. 작년에는 뉴욕타임스의 기사에 이 분의 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다. 올해 68세의 나이, 본명보다는 '슈퍼 마리오 (Super Mario)’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분, 크루즈에서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1000번의 항차를 항해하며 8000일을 넘게 크루즈에서 생활하신 분, 바로 Mr. Salcedo.이다. 그분에게는 크루즈가 자신이 생활하는 도시(City)이자, 객실은 집(House) 과도 같다.
만약 크루즈선안의 모든 승객들이 마리오처럼 10년, 20년 살게 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 크루즈선은 정말이지 바다 위 떠다니는 도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크루즈선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 바로 'THE WORLD 더월드'이다.
더월드는 거주 선박이다. 즉, 크루즈 안의 객실들은 승객들의 거주지로 쓰이며, 부동산처럼 소유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부동산(不動産) 은 정착물이라는 개념으로 부동, 즉 움직이지 않는 소유물이라는 뜻으로 부동산이라고 부르는데, 바다 위의 객실은 움직이니 부동산(不動産)이지만 동산(動産)인, 동산(動産)이지만 부동산(不動産)인 셈이다. 2017년 당시 객실의 가격이 약 200만 달러에서 1500만 달러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육지의 아파트처럼 분양권이 있거나, 프리미엄이 붙거나 하진 않는다. 다만 매년 물가상승률만 반영해서 가격이 변동된다고 하니 이 부분은 이해가 된다.
더월드는 2001년도에 건조되어 2002년부터 운항을 시작했고, ROW매니지먼트라는 회사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주로 크루즈 여행을 즐기기 위해 승선하는 크루즈선보다는 작은 4만 3천 톤의 사이즈이지만, 바다 위 거주 선박으로서는 가장 큰 사이즈이다. 총길이 196미터, 넓이 29.8미터, 12층 높이의 더월드에는 총 165가구가 살 수 있는 객실이 있다. 165가구 중 106가구는 아파트먼트, 19가구는 스튜디오 아파트먼트, 40가구는 스튜디오 형태로 크게 3가지 타입의 객실 구조가 있지만, 세부적으로 침실 1개, 2개, 3개 등 타입별로 객실수가 다르기도 해서 자신에게 맞는 타입을 선택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아파트를 구매할 때 몇 동의 A, B타입을 선택하듯이 말이다. 또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육지에서 아파트를 구매하고 입주자의 스타일에 따라 인테리어를 하듯이, 이곳 더월드에서도 객실을 구매하고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인테리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더월드 안에는 육지 위의 아파트 안의 커뮤니티처럼 각종 이용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수영장, 테니스장, 헬스장, 스크린 골프장, 퍼팅장, 조깅트랙, 슈퍼마켓, 쇼핑샵, 칵테일 라운지 그리고 6개의 레스토랑, 영화관, 도서관, 음악홀까지 이 모든 시설들이 더월드 크루즈 안에 있으며, 오히려 아파트 커뮤니티보다 더 많은 시설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게다가 크루즈는 바다 위를 항해하고, 새로운 기항지로 데려가 주기도 하니, 가만히 자기 생활, 시간을 즐기면서 전 세계 곳곳을 여행하기도 하니 그야말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기도 하다.
더월드의 거주 선박의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생각해낸 사람은 크루즈 산업에서는 유명한 분이다. 바로 1966년 Ted Arison과 노르웨지안 크루즈 라인 (NCL: Norwegian Caribbean Line)을 설립한 사람, 올해 90세를 맞이한 Knut U.Kloster이다. 이 분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라니, 놀랍지는 않다. 세계 최대 크루즈 회사 그룹, 카니발 크루즈 그룹의 전초를 만든 사람이지 않은가. 크루즈를 하나의 도시로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집을 갖고 평생을 사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Kloster가 더월드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고 하니, 아내와의 무전여행 후 이용 가능한 귀국 편이 없자, 비행기 한대를 사면 갈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을 했고, 그 후 비행기 한 대를 전세 내는 협상을 해서 귀국 편을 마련한 버진그룹의 CEO 리처드 브랜슨이 생각난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도 과거의 사람들에겐 상상 속의 세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상상을 하고 있다. 게다가 누군가는 그 상상을 실현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내가 꿈꾸는 크루즈 세상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해본다.
@Written by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