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푸드, 양배추쌈
엄마는 시골분이셨다. 아빠를 따라 서울에 왔지만 고향이 그리워질 때마다 엄마는 호박잎, 콩잎을 쪘다. 시래기나 고사리를 듬뿍 깔고 무 호박을 크게 썰어 넣은 생선조림을 자주 만들어드셨다. 나는 그 옆에서 삼삼하고 고소한 시래기 무침, 고사리 무침을 받아먹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주 야들야들한 어린 정구지(‘부추’의 경상도 방언)를 구해오셔서 꼭 부침개를 부쳐주셨고 늙은 호박과 감자로 전도 자주 부쳐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미료를 쓰지 않은 엄마의 음식은 어찌나 단정하고도 고급스러운 맛이었는지. 햄, 소시지와 같은 가공육, 냉동식품을 맛보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급식을 시작하고.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려서 먹었던 것들 때문일까. 외식도 자주 하고 요즘은 배달 서비스가 워낙 잘 되어있어 나도 거기에 기대어 살지만 몸이 지칠 대로 지쳤다고 생각될 때, 마음이 상할 때는 결국은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간다. 그때 맛보았던 엄마 맛을 내 손에서 찾게 된다.
한동안 양배추는 그냥 대충 렌지에 돌려 아삭하게 익혀 먹었는데 오늘은 찜기를 꺼내고 물을 올려서 달콤한 맛이 날 때까지 푹 쪄냈다. 이게 엄마의 방법이다. 한 가지 음식을 만들어도 꼭 최선의 정성을 담는 방법. 푹 쪄낸 양배추에 곁들일 나만의 고추참치 양념장도 만든다. 양파, 좋아하는 감자를 아주 듬뿍 넣고 시골에서 보내주신 매실고추장과 된장도 살짝 넣어 만드는 볶음장인데 매운 고추도 썰어 넣는다.
뜨거운 밥에 이 양념장을 듬뿍 올려 쌈 싸 먹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가 없다 (너무 맛있어 으아ㅠㅠ).
남은 양배추는 냉장해두었다가 내일 아침 들기름 간장에 또 싸 먹는다. 매콤한 이 맛과는 완전히 또 다른 맛이니까, 새롭다 -
나를 따라서 첫째가 들기름 듬뿍 넣은 간장에 양배추쌈을 야무지게 싸 먹는다. 누나 하는 걸 보고는 둘째도 손바닥에 양배추를 올리고 밥을 퍼서 입으로 쏘옥. 셋째도 양배추를 뜯어서 토끼처럼 오물오물 씹어본다. 우리 엄마도 그때 그랬을까, 표현은 안 했지만 맛있게 잘 먹어주는 나를 보면서 그때, 외롭고 지친 날 행복을 느꼈을까?
아이들이 야채를 맛있게 먹을 때! 아, 이보다 더 기쁜 순간이 또 있을까!(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 나는 먹는 게 중요한 엄마여서 아이들이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게 아주 큰 소원이다. 내 아이들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배달의 민족 대신 몸과 마음 일으켜줄 영혼의 음식을 찾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