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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소금 Oct 12. 2021

취향을 돌돌 말아서

집 김밥이 그리운 날, 취향가득 김밥 레시피

6년 전 첫 아이의 첫 소풍 날을 기억한다. 어린 딸이 좀 더 먹기 편하라고 소고기와 야채들을 아주 잘게 다져서 한입 크기로 주먹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 보냈다. 그날 오후 어린이집 알림장을 받아보고는 ‘앗, 나의 실수!’ 한 날이었다.


우리 딸이 소고기 주먹밥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집 아이의 꼬마김밥만 연신 쏘옥 쏙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는 것. 귀엽기도 하고 어찌나 마음이 아렸는지 -

맞다. 소풍날에는 무조건 김밥, 김밥이다. 엄마가 이른 새벽부터 까만 도화지에 정성을 꼭꼭 눌러 담아 말아주는 부엌에서 탄생하는 엄마의 예술작품, 김밥.


그 후로 소풍날 아닌 보통날에도 어린 딸을 위해 김밥을 더 자주 쌌다. 전날 먹다 남은 불고기가 있는 날에는 불고기김밥, 팬트리에 참치 캔이 눈에 띄는 날은 참치김밥,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이 계란만 남아있는 날에는 계란김밥이다.

어떤 재료든지 간이 베어 고소한 밥과 함께 김에 말아주면 아이는 한 줄을 뚝딱 먹고도 더 집어 들고 “엄마 최고” 해주었다.


김밥에 재료를 항상 길쭉하고 정직하게 넣어야 할 필요는 없다. 가끔은 야채만 듬뿍넣고 볶음밥을 휙 볶아 계란지단에 먼저 한번 말아주고, 김으로 감싼다. 아이들이 정말 잘 먹는다.




취향을 돌돌 말아서 싸는 우리 집 김밥 레시피

1. 불 앞에 서기 싫은 날, 고사리 김밥

냉장고를 스캔한다. 좋아하는 찬 고사리나물 볶음, 오이 짱아찌가 눈에 띈다. 그냥 남아있는 반찬들을 적당히 골라내어 말아주면 너무 맛있어 헛웃음이 나는 그런 별미가 된다.


불 앞에 서기 싫은 날은 계란지단도 생략, 살짝 구워줘야 더 맛이 나는 햄이나 맛살도 전부 생략. 밥에 소금, 참기름 양념을 해서 김 위에 올리고 고사리나물을 길게 깔아준다. 냉장고를 깨끗하게 비울 겸 아삭한 오이맛 아삭이고추는 씨를 빼고 넣어주고 오이장아찌도 물기를 꼭 짜 오독오독한 맛을 내라고 넣었다. 이렇게만 싸면 너무 ‘착하고 순박한 시골 맛 김밥’이 될 거 같아 참치도 넣고 마요네즈도 한 줄 짜준다. 그야말로 취향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돌돌 말아준 고사리 김밥. 내 마음대로 쌌지만 이건 어디가서도 맛볼 수 없는 아주 근사한 맛이다. 남편 눈이 휘둥그레 지는 첫 번째 취향 가득 김밥, 고사리 김밥.


 


2. 아이들과 함께 먹는 아보카도 파프리카 김밥

아이들이 갑자기 김밥을 찾을 때가 있다. 준비된 김밥 재료가 없어도 괜찮다. 맛있게 간을 한 현미밥에 마지막 남은 아보카도 한 알을 넣고 파프리카도 넣어준다. 전날 먹다 남은 불고기도 조금(있다면. 없으면 없는 대로 싼다.) 아이들과 먹을 김밥에는 방부제와 색소처리를 하지 않은 하얀 단무지를 넣는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김밥을 쌀 때는 밥을 간할 때 사과식초나 현미식초, 집에 있는 식초 한 숟가락을 추가해주면 잘 어울린다. 아이들에게 아보카도와 파프리카를 먹일 수 있어서 흡족한 집 김밥이다.




3. 중독되는 맛 참치마요 고추김밥

이 김밥은 한번 맛보면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는 김밥이다. 김밥 자체도 맛있지만, 곁들여먹는 명란과 소스가 중요한 김밥!

기름을 쪼옥 뺀 참치와 다진양파를 마요네즈에 섞어 그냥 퍼먹어도 맛있는 참치 마요(글 쓰다 보니 알게 된 사실. 나 참치 좋아하네..)를 만들어준다. 아주 꼬수운 간을 한 밥을 깔고 참치마요, 씨를 뺀 아삭이 고추를 길게 길게 깔아준다. 돌돌 말아 썰어주고 깨를 뿌리면 완성. 꼭 같이 찍어먹어야 하는 소스를 만드는데, 간단하게 연겨자와 간장, 물, 올리고당을 넣어서 일명 마약소스를 만든다. 연겨자 간장소스에 찍어먹기도 하고 또 김밥 위에 명란을 올려 먹으면! 멈출 수가 없어 부엌으로 가 계속 더 말게 되는 김밥, 이보다 더 나의 취향일 수는 없다. 이 김밥에 계절이 있다면 분명 여름, 여름일 것이다. 아삭하고 개운한 그러면서도 계속 입맛을 당기는 여름맛 김밥이다.



김밥은 나에게 막내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열심히 이유식을 떠먹이면서도 내 끼니도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음식이다. 아이들에게도 양껏 야채를 먹일 수 있는 음식, 쌀 때마다 맛볼 때마다 친정엄마와 소풍날이 생각나는 어린 날의 추억이 같이 말아져 있는 음식. 그래서 보통날의 특별한 김밥을 좋아한다.



급한 마음에 못생겨도 삐뚤어져도, 김밥은 김밥.
이 모든 김밥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뽀얀 잔치국수 곁들이기!



이보다  창의성을 발휘할  있는 메뉴가  있을까? 무엇을 싸든 아주 맛없기는 힘들다. 오늘도 까만 도화지위에 취향을 돌돌 말아서 만드는 엄마의 예술작품,  김밥. 나는 오늘도 주방에 서서 김밥을 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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