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김밥이 그리운 날, 취향가득 김밥 레시피
6년 전 첫 아이의 첫 소풍 날을 기억한다. 어린 딸이 좀 더 먹기 편하라고 소고기와 야채들을 아주 잘게 다져서 한입 크기로 주먹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 보냈다. 그날 오후 어린이집 알림장을 받아보고는 ‘앗, 나의 실수!’ 한 날이었다.
우리 딸이 소고기 주먹밥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집 아이의 꼬마김밥만 연신 쏘옥 쏙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는 것. 귀엽기도 하고 어찌나 마음이 아렸는지 -
맞다. 소풍날에는 무조건 김밥, 김밥이다. 엄마가 이른 새벽부터 까만 도화지에 정성을 꼭꼭 눌러 담아 말아주는 부엌에서 탄생하는 엄마의 예술작품, 김밥.
그 후로 소풍날 아닌 보통날에도 어린 딸을 위해 김밥을 더 자주 쌌다. 전날 먹다 남은 불고기가 있는 날에는 불고기김밥, 팬트리에 참치 캔이 눈에 띄는 날은 참치김밥,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이 계란만 남아있는 날에는 계란김밥이다.
어떤 재료든지 간이 베어 고소한 밥과 함께 김에 말아주면 아이는 한 줄을 뚝딱 먹고도 더 집어 들고 “엄마 최고” 해주었다.
취향을 돌돌 말아서 싸는 우리 집 김밥 레시피
1. 불 앞에 서기 싫은 날, 고사리 김밥
불 앞에 서기 싫은 날은 계란지단도 생략, 살짝 구워줘야 더 맛이 나는 햄이나 맛살도 전부 생략. 밥에 소금, 참기름 양념을 해서 김 위에 올리고 고사리나물을 길게 깔아준다. 냉장고를 깨끗하게 비울 겸 아삭한 오이맛 아삭이고추는 씨를 빼고 넣어주고 오이장아찌도 물기를 꼭 짜 오독오독한 맛을 내라고 넣었다. 이렇게만 싸면 너무 ‘착하고 순박한 시골 맛 김밥’이 될 거 같아 참치도 넣고 마요네즈도 한 줄 짜준다. 그야말로 취향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돌돌 말아준 고사리 김밥. 내 마음대로 쌌지만 이건 어디가서도 맛볼 수 없는 아주 근사한 맛이다. 남편 눈이 휘둥그레 지는 첫 번째 취향 가득 김밥, 고사리 김밥.
2. 아이들과 함께 먹는 아보카도 파프리카 김밥
아이들이 갑자기 김밥을 찾을 때가 있다. 준비된 김밥 재료가 없어도 괜찮다. 맛있게 간을 한 현미밥에 마지막 남은 아보카도 한 알을 넣고 파프리카도 넣어준다. 전날 먹다 남은 불고기도 조금(있다면. 없으면 없는 대로 싼다.) 아이들과 먹을 김밥에는 방부제와 색소처리를 하지 않은 하얀 단무지를 넣는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김밥을 쌀 때는 밥을 간할 때 사과식초나 현미식초, 집에 있는 식초 한 숟가락을 추가해주면 잘 어울린다. 아이들에게 아보카도와 파프리카를 먹일 수 있어서 흡족한 집 김밥이다.
3. 중독되는 맛 참치마요 고추김밥
기름을 쪼옥 뺀 참치와 다진양파를 마요네즈에 섞어 그냥 퍼먹어도 맛있는 참치 마요(글 쓰다 보니 알게 된 사실. 나 참치 좋아하네..)를 만들어준다. 아주 꼬수운 간을 한 밥을 깔고 참치마요, 씨를 뺀 아삭이 고추를 길게 길게 깔아준다. 돌돌 말아 썰어주고 깨를 뿌리면 완성. 꼭 같이 찍어먹어야 하는 소스를 만드는데, 간단하게 연겨자와 간장, 물, 올리고당을 넣어서 일명 마약소스를 만든다. 연겨자 간장소스에 찍어먹기도 하고 또 김밥 위에 명란을 올려 먹으면! 멈출 수가 없어 부엌으로 가 계속 더 말게 되는 김밥, 이보다 더 나의 취향일 수는 없다. 이 김밥에 계절이 있다면 분명 여름, 여름일 것이다. 아삭하고 개운한 그러면서도 계속 입맛을 당기는 여름맛 김밥이다.
김밥은 나에게 막내를 아기의자에 앉히고 열심히 이유식을 떠먹이면서도 내 끼니도 든든하게 챙길 수 있는 음식이다. 아이들에게도 양껏 야채를 먹일 수 있는 음식, 쌀 때마다 맛볼 때마다 친정엄마와 소풍날이 생각나는 어린 날의 추억이 같이 말아져 있는 음식. 그래서 보통날의 특별한 김밥을 좋아한다.
이보다 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메뉴가 또 있을까? 무엇을 싸든 아주 맛없기는 힘들다. 오늘도 까만 도화지위에 취향을 돌돌 말아서 만드는 엄마의 예술작품, 집 김밥. 나는 오늘도 주방에 서서 김밥을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