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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Nov 26. 2023

가을과 겨울 사이

단독주택 살아보니 #22

 따뜻했던 가을 날씨 하루 만에 차가운 바람으로 변했다. 창문을 열어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캐럴을 들으면 딱 어울리는 그런 계절이 되었다. 수국은 꽃 모양 그대로 바싹 구워진 것만 같고, 잔디는 누렇게 물들어 가며 정원에는 냉기가 돈다. 이 타이밍에 분을 보면 이 식물은 월동을 하던가 안 하던가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래서 월동을 못하는 식물은 눈에 띄는 대로 안으로 들인다. 그래서 실내는 다시 식물들로 복작거리며 가득 차기 시작하고, 이 되면 더 추워지는 날씨에 가스보일러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이제 추워서 마당에서 하던 줄넘기나 물 주기도 잘 나가지도 않는다. 식물도 사람도 이제 실내에 콕 혀서 살아야 한다.

추워지고 서리가 오더니 첫 눈이 내렸다.

 자연히 이 시기가 되면 폭주하던 식물 욕심도 접게 된다. 정말 키우고 싶은 식물만 남기게 되는 거대한 겸손 앞에 서게 된다. 음씨 좋은 식집사들의 식물 나눔도 안 받고, 씨앗도 안 사고, 흙꽂이 상자도 깨끗이 비웠다. 올해 틈틈이 꽂아 놓은 흙꽂이 성적은 별로 안 좋은데, 뿌리가 난 식물들도 땅에 심으면 거의 다 죽었다. 6월에 삽목 한 황금사철나무 10주만 내년을  함께 맞을 것 같다. 길고양이가 들락날락거리느라 생겨버린 황금사철나무 사이의 큰 구멍을 어린 황금사철나무 흙꽂이 3주로 막았다. 작년에는 식물 열정을 죽이지 못하고 겨울에 집에서 파종을 해보겠다며 10종류 넘게 씨앗을 뿌렸다. 새싹들은 실내에서 크다가 죽고, 너무 일찍 마당으로 정식했다가 얼 죽고, 겨울 여행 때 물을 못 줘서 말라죽기도 했다. 새싹부터 키우기에는 너무 연약한 생명체들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식물에 대한 욕심과 책임감을 번갈아 보다 과감히 포기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올해는 델피니움 한 종류만 뿌려서 키울 것이다. 델피니움은 작년에 뿌렸던 10종 중에서 유일하게 잘 됐는데, 겨우내 집에서 새싹부터 본잎 몇 장 나올 때까지 차근히 키우다가 날이 풀리고 마당으로 옮겨 심었더니 쑥쑥 자라 아름다운 꽃까지 줬다. 긴 시간 농축했던 에너지를 폭발해서 엄청난 성장을 해낸 것이다. 램스 이어, 버들마편초도 파종으로 시작해서 엄청 번식을 잘해서 정원 한쪽을 든든히 채웠다.

겨울을 맞아 변하는 익어가는 열매와 잎

 월동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이사 온 첫 해에는 경험이 없어서 월동 준비를 철저히 해놓지 않으면 마당의 모든 식물들이 죽어버릴 것 같은 공포심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유튜버가 낙엽으로 흙을 덮어서 월동을 하는 팁을 주는 영상을 보고 환경미화원이 길에 모아놓은 낙엽 쓰레기봉투를 퇴근길에 부지런히 짊어지고 집으로 왔다. 대형 쓰레기봉투를 열어서 화단에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골고루 쏟아부었다. 구하기 편하고 돈도 안 드는 낙엽 이불을 잘 가져왔다고 속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건조한 겨울 내내 그 낙엽이 정원 이리 저리로 흩어지며 날리니 너무 지저분했다. 남들은 쓸어내는 낙엽을 도리어 뿌린 것이다. 봄쯤 되니 검게 썩어가는 낙엽들이 더 지저분하게 날리기 전에 다시 하나하나 주워 담아야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사는 곳은 남쪽 지방이라 이렇게까지 보온을 할 필요는 없었다. 가 따라한 정원 유튜버는 강원도에  살고 있는 듯했다. 옆집에 물어보니 따로 월동 준비 안 시켜줘도 수국 장미도 다시 핀다고 하니, 다시 낙엽은 뿌리지 말고 빈  땅 위에 비닐 정도를 덮어줄 생각이다. 혹시나 까먹고 챙기지 못해 얼어 죽는 식물이 생기더라도 죽는 대로 둘 생각이다. 정원 2년 차에 점점 편안한 정원을 추구하려고 하기에 기후에 맞지 않는 식물은 키우지 말자는 마음이 생겼다. 

거창했던 작년의 낙엽 월동과 약소해진 올해의 월동 비닐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11월 중순이 되 서리가 왔다. 이제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 시기가 되었다. 월동 준비 리스트에 들지 못해 죽어가는 식물 몇 종류가 보인다. 텃밭을 보니 월동 시금치는 새싹 상태로 서리를 맞았지만 과연 추위에 강한 품종이라더니 눈 맞고도 자라는 모습이 놀라웠다. 하지만 스티로폼 상자에서 한 달 정도 자란 알타리 무는 더 이상 커지지 못하고 노란 잎을 내고 있다. 봄에 심은 가지도 얼고, 바질도 얼었다. 봄에 심은 채소들은 장엄한 끝을 맞았다. 서리는 식물뿐 아니라 골목에 세워둔 내 차에도 내렸다. 아침에 출근을 하려면 차의 앞 유리, 옆 유리, 뒷 유리까지 두껍게 내린 서리를 처리해야 한다. 물을 뿌리고, 열심히 긁고 닦는 수고가 든다. 차 안도 추워서 카 시트, 핸들 열선, 히터까지 모두 켜도 춥다. 직장이 별로 안 멀어서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차 없이 걷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이 든다.


  추워서 외부 드닝은 줄여야 하지만 좋은 점이 있는데, 각종 해충이 없다는 점이다. 일단 모기가 줄어서 정원에 못 가는 곳이 없다. 정원에는 모기가 유난히 더 많은 그늘진 구역이 있어서 뭐라도 심으려고 하면 옷을 뚫고 모기를 물릴 마음을 먹고 들어가는 데, 겨울에는 어디든 갈 수 있어서 자유롭다.  여름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으면 혹여나 구더기 군단을 만날까 공포심이 생기는데, 겨울에는 구더기안 생겨서 음식물 쓰레기가 쾌적하다. 바깥을 나가도 차가운 공기가 깨끗해서 마스크가 필요 없고, 텃밭에 노린재와 각종 잎 벌레들도 점점 사라다. 초도 가끔 지나가다가 뽑는 수준으로 관리가 끝난다. 약을 잘 안 하는 친환경 정원에는 겨울만한 치료제가 없다. 방해꾼이 없는 텃밭에는 대신 월동 시금치와 마늘, 봄동을 심었는데, 벌레는 없지만 추위에 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눈 맞고도 자라나는 시금치 봄동 마늘 싹


 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겨울은 길고 겨울밤도 유난히 길다. 겨울밤 마을 밤 산책을 나가보니, 이웃집에는 겨울맞이 못 보던 조명 장식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로 무를 감싸니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어서 밤새 쉴 새 없이 반짝거리고, 집 외벽을 큰 알전구를 둘러놓으면 꼭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낮에 비축한 태양광으로 빛을 내는 바닥 조명을 한 집도 멋졌다. 리 집도 영감을 받아서 마당 겨울 데코에 나섰다. 작년에 현관에 걸어놓은 전나무 리스는 1년 새 전부 말라버렸다. 빨갛게 불타고 있는 남천 열매를 추가해서 생기를 살렸다. 주차장 앞 웰컴 화분이 있는데, 처음에는 칸나 꽃이 피다가 노란 잎을 내며 죽어가서 티트리 나무로 바꿨다. 호주 식물들은 월동을 못한다 하여 티트리도 실내로 옮겨야 했다. 이렇게 성장이 너무 왕성하거나 계절을 타는 식물은 주차장을 지키는 식물로 적합하지 않았다. 식물을 겨울 식물인 동백나무로 바꿀까 하다가 이것도 언젠가는 손이 갈 것 같아서 아예 상록 침엽수종인 블루 아이스와 문그로우를 우리 집 보초 식물로 정했다. 일 년 내내 한결같은 초록으로 우리 주차장을 지키는 역할로 임명됐다.


밤의 얼굴이 드러나다


 겨울맞이 대망의 이벤트는 2층 데크 난간에 알전구를 설치한 것이다. 원래 우리 집은 밤이면 외부 조명을 잘 켜지 않아서 사람이 드나들 때 센서등이 켜질 때 말고는 집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점이 늘 아쉬워서 올해는 꾸며보기로 했다. 전기 작업은 부담스러워서 자동으로 켜고 꺼지는 태양열 전구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 설치 장소는 남향으로 빛이 잘 다. 춥고 깜깜한 겨울밤에 아들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2층 데크에 나가서 난간 길이를 재고, 태양열 전구를 검색해서 하나를 골라 주문을 하고 택배를 받았다. 손 빠른 남편의 도움으로 전구를 난간에 감아 잘 고정하고 밤을 기다렸다. 어둠이 깔리고 조명이 지자 우리 집의 밤의 얼굴이 드러났다. 밤의 고요함 속에 돋보이는 불빛은 마치 집 안의 따스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모습인 듯했다. 낮에는 태양광을 저장했다가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커지고 전력이 떨어지면 알아서 꺼진다겨 한다. 게으른 나에게 딱 알맞는 방식으로 겨울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었다. 가을과 겨울 사이, 많은 생명이 잠들고 숨죽이는 시기이지만 이런 따뜻한 이벤트와 함께 라면 이 겨울이 더 의미 있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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