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고급재이다.
-피렌체 관광, 두오모 성당-
넷째 날이 밝았다. 일요일, 오늘은 브루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예약을 할 때 이미 정원이 다 차서 등록할 수 없었다. 그동안 피곤이 누적되어서 늦잠을 잤는데도 몸이 한없이 늘어진다. 브루잉 수업을 등록 못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지 한인교회를 검색해 두었지만 숙소에서 1시간 이상 걸린다. 그나마 가까운 교회를 찾아보고 예배시간을 확인하며 씨름하기를 지속하다 보니 어느덧 정오가 되었다. 숙소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 스스로 타협을 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 밀린 빨래를 하고 방을 정리한다. 어느덧 오후 2시가 넘어간다. 근처 마트를 찾아 나선다. 이것저것 장을 보고 요리를 하니 어느덧 오후 4시가 훌쩍 넘었다. 점점 초조해진다. 벌써 5일가량 피렌체에 머물고 있지만 관광지에 발조차 들이지 않았다. 오늘 안 가 본다면 다른 날은 더욱더 못 가게 될 것이다. 의무감에 습기를 가득 머금은 듯 무거운 몸은 일으켜 피렌체 시내로 나간다.
도착하니 벌써 저녁 6시이다. 피렌체의 4월에는 아직 밝은 시간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건축가 미카엘이 추천한 두오모 성당을 찾아 나선다. 걷다 보니 덥고 배가 고프다. 젤라토를 하나 사서 먹는다. 날씨가 더워서 금방 녹는다. 벌써 손에도 아이스크림 몇 방울이 흘러내렸다. 휴지로 다급하게 닦으면서 반대쪽에서 걸어오는 관광객들과 마주한다.
일요일이라 두오모 성당 내부를 볼 수 없었지만 관광객들로 붐빈다. 성당 계단에 앉아 있자니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야구모자를 쓴 건장한 남성이 성악을 부른다. 그 어떤 음향장치도 없었지만 그의 성량은 대단했다. 기록용으로 그의 노래를 영상으로 남긴다. 여기저기 거리의 영상도 남겨 본다.
내일의 수업을 위해 서둘러서 숙소로 돌아간다. 날이 어두워지니 마음이 급해졌다. 피렌체의 밤거리를 즐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둑어둑해져 오는 거리는 어서 빨리 숙소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그린커피 코스-
하루 쉬고 상쾌한 기분으로 학원에 도착했다. 항상 먼저 와 있던 파블로 부부가 웬일로 지각을 했다. 어제도 늦은 시간까지 놀았다고 한다. 다크서클이 짙어진걸 보니 꽤나 피곤한 듯하다. 바리스타코스가 끝나고 나니 확실히 인원이 많이 줄었다. 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걸 싫어하기에 한결 쾌적한 환경이라 여겨졌다.
삼세번의 법칙이 정말 있다고 했던가... 그토록 알아듣기 힘들던 애틀랜타에서 온 제니의 발음이 이제야 좀 들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그녀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일까? 특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 말하는 'that' 그녀의 억양이 입에 붙는다. 이 정도면 어디든 좀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든 될 거란 자신감이 생긴다. 그녀는 이제 대학에 들어간다고 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귀여운 소녀다.
오늘은 커피 원두에 대해서 배울 차례이다. 흔히 커피 생두, 커피콩이라고들 표현한다. 그린커피라(Green Coffee)는 영어식(이라 읽고 사실상 국제적인) 표현이다. 로스팅하기 전의 커피원두는 옅은 연두색을 띠기 때문에 그리 불려지는 듯하다.
커피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에티오피아산 원두에 대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도 하다.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라는 지역에서 처음으로 커피콩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역시 감성충만한 그들의 감각이란...
흔히 바디감이 가볍고 산미감이 있는 아라비카 커피가 발견된 곳이다. 이에 비해 쓴맛과 바디감이 강조되는 로부스타는 중앙과 서아프리카를 포함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발견 유래되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아프리카에서 현재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원두가 모두 유래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도 족보와 가문이 있듯이 커피에도 커피나무 계보가 있다.
[커피나무 사진]
전 세계적으로 원두가 생산되는 지역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호주의 북동부 정도가 될 것이다. 대체적으로 따뜻하고 건조하거나 혹은 습기가 많은 장소이다. 건조한 곳은 아라비카원두가 습한 곳은 로부스타원두가 생산된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에서 연유커피가 유행하는 이유는 쓰고 강한 에스프레소와 단맛이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원두를 수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커피열매를 하나하나 손으로 따는 피킹(picking), 손으로 나무 가지를 흩어 내리며 열매를 나뭇가지에서 일제히 벗겨내는 스트리핑(Stripping)이 있다. 대형농장에서는 경운기 같은 농기계가 커피나무 사이로 다니며 커피체리를 대량수확한다. 피킹은 손으로 열매를 한 알 한 알 따는 것이기에, 가격이 올라가지만 품질은 우수하다. 스트리핑이나 기계로 하는 수확은 피킹에 비해 가격과 노동력이 절감되지만 품질은 비교적 낮다.
[이미지 출처: https://www.viennacoffeecompany.com/blog/cascara]
처음 수확한 커피열매는 그 모양이 체리와 흡사해서 그런지, 커피체리(Coffee Cherry)라고 불린다. 우리가 먹는 커피는 이 체리열매의 씨앗이다. 시중에서 보는 커피원두는 이미 생산지에서 세척과 건조의 과정 중에 커피열매에서 분리된 것이다. 건조된 원두는 커피체리의 10-12%에 준하는 중량의 습기만 남길 때까지 건조된다고 한다. 자연건조(Natural dry Process)의 경우, 흔히 시골에서 고추를 멍석에다 펴 말리는 것과 흡사하다. 말 그대로 넓은 마당에 커피체리를 펴놓고 낮동안 갈퀴로 뒤집는 작업을 몇 번식 반복하며 햇빛에다가 자연건조 하는 것이다. 자연건조는 보통 산미도가 낮고 바디감이 높으며 달콤하다.
다음으로는 워시드 가공(washed process)이 있다. 기계로 커피체리 과육을 제거한 다음 물로 씻은 다음, 물이 담긴 발효탱크에 담긴다. 이후, 마당이나 아프리칸베드(African bed) 같은데 늘여놓고 말려진다. 이렇게 건조된 커피원두는 자연건조를 거친 원두보다 산미도가 높고 청결하며 바디감이 가볍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또다시 두 개의 조로 나뉘었다. 강사가 책상 위에 생두가 담긴 접시를 둔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한 알 한 알 골라내기엔 적지 않은 양이다. 온전한 생두와 결함이 있는 생두를 가려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결함이 있다는 건 설익거나 혹은 너무 익다 못해 까매진 원두 혹은 벌레가 먹었거나 깨진 생두 등 다양하다. 지루한 작업에 이미 뒤로 물러선 학생들도 있다. 엉뚱한 데서 승부욕이 발동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다 골라낸 결함 있는 생두]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지어만든 명품이 있다고 했던가?
커피야 말로 한 알 한 알 따고, 껍질을 벗기고, 세척하고, 골라내고, 굽고, 갈아내기까지 하는 고급 재라는 생각이 든다.
지루한 작업 뒤에는 재미있는 작업도 있다. 바로 원두 크기를 스크리닝 하는 작업이다. 강사가 여러 개의 나무판이 포개어진 판을 들고 왔다.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트료시카(큰 인형 안에 사이즈별로 작은 인형이 차곡차곡 들어가 있는 나무인형)'과 흡사하다. 맨 위의 철판에 원두를 쏟아붓고 통을 좌우로 세차게 흔들면 철판의 난 구멍들보다 큰 사이즈의 원두만 남고 모두 아래로 떨어진다. 그렇게 가장 위의 철판을 제거하니 살짝 작은 구멍이 있는 철판이 있다.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니 맨 아래의 철판에는 가장 작은 원두 알갱이들만 남았다. 원두의 크기를 분류하는 작업이다. 스크린_원두크기 측정_ 사이즈는 최소 9에서 최대 20까지 있다. 스크린의 1인치가 0.4mm가량 되니, 9는 약 3.6mm라고 보면 된다.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디카페인에도 소량의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다. 유럽기준 0.1% 이하의 카페인만 남아 있어야 하지만 미국은 3%의 카페인이 남아도 기준을 충족한다. EU의 기준이 좀 더 엄격하다고 볼 수 있다.
-5유로의 행복-
오늘 점심은 좀 더 풍성하게 주문했다. 샐러드와 봉골레를 시켰다. 역시 반도의 민족들이란... 대접에 파스타와 샐러드가 흘러내릴 듯이 가득 담겨서 나온다. 그들 역시 한국인들처럼 먹는데 진심인듯하다. 심지어 와인 한 병이 서비스로 그냥 나온다. 샐러드가 너무 많아서 나눠 먹었다. 스파클링과 미네랄 중에 선택할 수 있는 작은 물병도 각각 비용추가 없이 제공된다. 유럽에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늘은 추가를 해서 평소보단 가격이 좀 더 나간다. 5유로를 냈다. 이 식당에 아주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