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두와 과학의 절묘한 조화
커피숍 경영수업에 이어 마지막 날, 커피 로스팅(Coffee Roasting)에 대해 배우는 날이다. 드디어 긴 여정을 완수하는 날이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스스로에게 갈채를 보냈다. 오전에는 교실에서 이론 수업을 들었다. 커피에도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한다. 모두가 아는 바리스타, 커피생두의 맛을 평가하는 전문가 Q-Grader, 로스터(Roaster)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로스터야말로 커피 원두의 생산-유통-원두의 맛과 품질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가라고 생각된다.
로스터가 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를 아울러 그린빈을 수입해 오는 경로를 직접 개척하든지 아님 커피콩 수입처를 알아야 한다. 대규모 원두 생산지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가내 수공업으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생산지가 꽤 많다. 전문 로스터는 직접 소규모의 커피생산지를 방문해서 계약을 따내고 원두를 수입해 오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원두를 어디서 받아오든지 로스팅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품질의 원두를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이용되는 기술이 커핑(Cupping)이다. 첫날에도 했던 커핑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로스팅한 후에 한번 더 반복했다. 커핑을 하기 위해서는 생산지별로 원두를 분류해 두고 일정한 양을 분쇄한다. 컵에 담긴 원두의 냄새를 킁킁 거리며 맡아본다. 아로마향을 기록한다. 뜨거운 물을 가루 위에 그대로 붓는다. 컵 상단에 떠 있는 원두가루를 숟가락으로 세 번 뒤로 밀면서 냄새를 맡는다. 떠 있는 커피가루를 건져 올린 뒤, 살짝 맛을 본다. 이때도 그냥 마시기보다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삼키라고 한다. 입천장에 커피가 닿으며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 테이스팅과 흡사하다. 전문가들은 이때, 마시지 않고 뱉어낸다고 한다.
전문 로스터들이 생두를 받아오면 무작위로 샘플 원두를 선별해서 스크리닝과 커핑을 통해 원두의 품질을 검증한다고 한다. 지불하는 가격에 합당한 물건이 들어오는지 보는 것은 첫 번째 관문일 것이다. 깐깐한 로스터에게 수입업자나 혹은 생산자는 좀 더 신경 써서 좋은 원두를 공급할 것이다.
로스팅 작업은 화학작용과 과학기술이 혼합된 최고의 기술이다. 원두가 볶아질 때, '열의 대류' '열의 전도' '열 에너지복사'의 모든 원칙이 사용된다고 한다. 너무 빨리 볶아버린 원두는 겉은 딱딱한데 그 속은 물렁하다. 너무 천천히 볶은 원두는 겉과 속이 너무 딱딱해진다. 흔히 말하는 탄 맛, 쓴 맛이 너무 강해진다. 좋은 로스팅은 그 중간쯤 어딘가의 선에서 볶아져야 한다.
로스팅 과정 중 1차 크랙(crack) 이 발생하면 뒤이어 곧 2차 크랙이 일어난다. 곧 일정 수준의 온도에 도달해서 로스팅이 끝난다. 로스팅할 때, 온도를 추적하면 U자의 포물선을 그린다. 원두는 기계 안에서 가해지는 열과 냉각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열과 냉각, 팽창과 수축, 약 10분 동안 고난의 시간을 통과한 원두는 그제야 빛을 발한다. 원두 안에 있는 당분이 흘러나와 캐러멜화 되며, 향기로운 풍미를 머금게 된다.
아직 끝이 아니다. 갈색의 멋진 옷과 향기를 품고 나온 원두는 다시 냉혹한 평가와 마주하게 된다. 인고의 시간을 거친 원두는 생두보다 부피는 커지나, 무게와 수분은 감소해야 한다. 그 수치는 이미 기준(ISO STANDARD)이 있다. 습도계와 밀도계로 측정한다. 로스팅을 거친 원두는 생두보다 크기가 1/3 가량 더 커지고 무게는 1/4 가량 감소한다. 이전에 약 12%를 머금었던 수분은 모두 날아가 0.5%~5%의 미량만 머금게 된다. 갈대가 성숙할수록 고개를 숙이듯 고통을 지나온 커피콩은 한결 단단해지고 향기로워진다. 습기가 별로 없어서 곰팡이가 쓸 염려도 거의 없어진다. 생두의 보관이 워낙 까다로워 최대한 빠르게 로스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체사진 '찰칵!'-
드디어 수료증을 받는다. 사무실 뒤편에서는 강사 윌리엄이 열심히 프린트를 하고 있다, 빳빳하고 두꺼운 종이에 금색, 검은색을 곁들여 인쇄된 수료증은 꽤 그럴듯해 보인다. 모여서 단체 사진도 찍고 인사를 나눈다. 대부분 오늘 혹은 내일 피렌체를 떠난다고 한다. 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선다. 나오는 길에 애리조나에서 온 카페식구들의 단체사진도 몇 장 찍어주고 학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