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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 컴패니언 Dec 05. 2022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은 욕구 받아들이기

                                     대부분의 행동에는 한 가지 이상의 동기가 있다.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 Maslow)-  

   

“나 좀 봐줘!” “내가 이거 했는데 어때?”라고 묻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래, 잘했어” “수고했어” “괜찮은데”라고 바로 상대방의 반응이 온다. 그러면 안심이다. 자신이 그동안 쏟아부은 에너지가 모두 보충되는 느낌이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자기 자신은 기가 살고 죽는다. 자신을 살리고 죽이는 건 자기가 아니라 상대방인 셈이다. 필자인 나는 일터에서 두 번의 상처를 겪고 나서야 알게 된 게 있다. 내 안에 가면을 쓰고 있는 ‘인정 욕구’를 본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인정 욕구는 나를 숨을 쉬지 못하고 죽을 것 같은 공황 발작으로 몰고 갔다. ‘완벽하게 하는 사람’ ‘역시 유능한 사람이었네’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 안에 있는 인정 욕구가 너무 커서 채워도 채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이 50에 무슨 ‘인정 욕구’ 타령인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인정 욕구를 관리하지 않으면 자기 삶의 주인 자리를 뺏길 수 있다. 나이 50에는 이후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기초를 다지는 시기다. 언제까지 남의 인정에 목말라하면서 끌려가듯이 살 것인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좀 느긋하게 평안하게 살 수는 없을까? 내면 있는 인정 욕구는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억지로 밀어내지도 못한다. 내면에 있는 이 친구는 자신에게 많은 성취를 안겨준다.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자신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운다. 이제는 친구가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기는 싫다. 남의 말 한마디에 온통 귀를 쫑긋 세우고 가슴을 벌렁거리는 짓을 하고 싶지도 않다. 자신의 내면의 인정 욕구와 관계를 새로 맺어야 할 시기다.     

      

50이 되면 이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스트레스로 버텨내지 못할 만큼 지쳐간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인정 욕구’는 자기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다. 이 친구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이 아닌 남들과 세상이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남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다. 빈말이라도 잘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옛날 왕들도 처음에는 바른말을 잘하는 신하를 옆에 두고 선정(善政)을 펴고자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옆에는 바른말을 하는 신하는 찾아볼 수 없다. 왕의 비위를 잘 맞추는 신하가 둘러싸고 있다. 왕은 지적보다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신하를 좋아한다. 왕 자신이 선택한 간신에 의해 결국 왕은 나라를 망친다. 왕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인정 욕구라는 괴물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의 시나리오를 역사에서 볼 수 있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의 내면의 인정 욕구가 하자는 대로 삶을 맡길 수 없다. 자신의 몸과 마음은 예전 같지 않다. ‘어 왜 이러지?’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때 자신이 살아온 삶의 전체 과정을 되돌려 볼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자신도 모르게 세상의 기준과 남들의 눈높이를 바라보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남의 칭찬에 길이 들여진 자신의 모습은 없는지 살펴볼 시기다. 자신이 이룬 직업적인 성공, 사업, 재산, 권력, 명예도 남과의 비교에서 상대적이다. 자신은 인정받고 부러움을 받지만, 누군가는 인정받지 못해 좌절하고 쓰러진다. 자신이 이룬 삶의 값어치를 남의 평가와 잣대에 맡겨야 하는가? 50 이후에는 남의 평가로부터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내면의 인정 욕구를 잘 데리고 가야 한다.     


사람은 먹지 못하고 마시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하면 죽는다. 인간은 혼자 살 수가 없다. 남들과 함께 살면서 무리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자신이 버려진다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인정 욕구는 늘 불을 켜고 남들의 시선을 따라다닌다. 인정 욕구는 자신의 생존과 관련 있는 본능적인 욕구다. 남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내면의 욕구를 채울 수 없다. 왜냐하면 내면의 인정 욕구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만족한다’라고 쉬지 않고 속삭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정 욕구는 사람을 가린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사회적으로 권위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자신이 달성한 성과를 인정할지 말지, 얼마나 인정해 줄지는 남들의 선택이다. 자신의 통제 범위 밖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인정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은 자기 삶의 평가를 남에게 통째로 넘기는 꼴이다. 자신은 남의 인정에 민감하게 고분고분 의존하는 사람으로 길든다. 자신은 남의 평가에 의존할 때 무력감을 느낀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위해 살아왔는가?’ 자신의 삶이 아닌 것 같아 생소하게 느껴진다. 남의 인정에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것은 어린 시절의 열등감을 벗어나지 못했을 수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중요한 사람으로부터 충분한 보살핌과 격려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이룬 성취를 남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자신의 내면의 열등감과 관심을 보상받고자 한다.     

      

자신의 내면의 인정 욕구가 지나치면 남의 달콤한 사탕발림의 말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판매원의 칭찬 한마디에 계획에도 없던 명품을 덥석 사기도 한다. 또한 남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성과를 올려 인정받고 승진을 하기 위해 일에 매달린다. 성과를 내기도 전에 자신은 탈진상태에 빠진다. 남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다가 오히려 갑자기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가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결점을 보이면 인정받지 못해!’라는 자신의 내면의 인정 욕구 훈육관의 지시에 짓눌린다. 몸은 긴장되고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공황장애를 겪기도 한다. 빠듯한 일정에 휴식도 제대로 취할 수 없어 알코올이나, 마약 성분의 약물에 손을 대기도 한다. 

          

심리학에는 인간의 욕구와 동기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 그중에서 ‘욕구 5단계 이론’은 인간의 동기를 다섯 단계의 위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아래 단계의 욕구가 상대적으로 잘 충족되지 않으면 바로 위 단계의 욕구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먼저 먹고 마시고 자는 등의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두 번째 단계의 건강, 주거, 재산, 직업, 보험 등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세 번째 단계인 사랑과 호의와 소속감과 관련된 욕구가 등장한다. 아내, 자녀, 연인, 친구의 부재(不在)를 예민하게 느낀다. 네 번째 단계의 욕구가 바로 ‘자기 존중의 욕구’이다. 자신에 대한 안정적이고 좋은 평가, 자부심, 자존감, 타인에게서 받는 존중의 욕구다.      


자기 존중의 욕구가 충족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고 힘과 능력이 있는 느낌, 세상에 도움이 되고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욕구가 좌절되면 열등감, 무력감, 나약함을 느낀다. 이런 느낌은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실망, 다른 보상 심리 또는 신경증적 성향으로 이어진다. 5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자기 완성의 욕망, 즉 잠재적인 자신의 모습을 실현하려는 경향이다. 이 욕구가 확실히 나타나려면 그 이전에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랑의 욕구, 존중의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 이 이론을 설명하는 격언은 다음과 같다. “배가 고플 때를 제외하면,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거절당한 사람이 아니라면, 사랑을 찾는 행위는 주된 동기가 아니다.”  

    

나이 50이 되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인정 욕구를 알아차려야 한다.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다. 자신의 삶을 남의 평판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다른 욕구와 마찬가지로 인정 욕구는 채울 수 없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채워야 한다. 다 채우지도 못하고 죽을 때야 채울 수 없음을 알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욕구는 채우는 방식으로는 채우지 못한다. 그 욕구를 남의 손을 빌려 채우려고 하면 채워지지 않는다. 상대방은 나 자신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다. 상대방은 각자의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상대방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상대방의 평가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의 인정 욕구는 자신이 해결해야 삶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알지도 못할 남의 기분에 춤추지도 않을 수 있다.


내면의 인정 욕구는 채워지지 않으면 불안한 감정을 끌고 올라온다. 원시시대의 생존 DNA가 자동적으로 반응한 결과다. 필자인 나는 이제 내 안의 인정 욕구의 실체를 조금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내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살짝살짝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린다. 수다를 떨거나 모임에서 혹시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은근히 내 이야기를 넌지시 물어보기도 한다. 내가 기대한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약간 마음이 상한다.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일을 중단해버리고 싶은 충동도 올라온다. 그 순간 나는 내 얼굴을 약간 싱긋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나는 내 안에서 내게 칭찬받고 싶다고 고개를 내미는 인정 욕구의 손을 잡는다. ‘어서 오라고, 잘 왔다’라고 하면서 안아준다. 내 안의 인정 욕구의 심상(心象, imagery)에게 고생했다고, 이제 할 만큼 충분히 했다고, 더 이상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거려 준다. 

         

(Tip!) 남에게 인정받기 전에 자신의 내면의 자기를 먼저 인정하기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면 내면의 인정 욕구부터 다정하게 받아주면 된다. 인정 욕구에 대해 질책도, 비난도, 평가도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 인정 욕구를 엄마 품처럼 따듯하고 부드럽고 친절하게 안아주고 또 안아준다. 인정 욕구가 하는 말을 회피하지 않고 눈 똑바로 뜨고 경청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그냥 인정하고 다독여 준다. 얼마나 인정받고 싶었는지 연민의 마음으로 보듬어주면 된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든 말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인정 욕구를 내가 얼마나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느냐이다. 내면의 욕구를 자신이 받아주면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저절로 시들해진다. 그러면 더 이상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앙탈을 부리지 않는다. 인정받지 못해 밀려날까 봐 불안해하고 두렵고 초조하지 않을 것이다. 주도적인 삶, 당당한 자기 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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