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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22. 2020

우리 집에, '파이어 핏'

'코로나'에도 밤마다 열리는 캠프파이어 불꽃 축제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파이어 핏'*이 도착했어요.  너무 진부한 표현이면 죄송합니다. '아기다리고디가리던'은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유행하던 표현입니다.

*'파이어 핏(Fire pit)'은 기본적으로 '불구덩이'를 의미한다. 보통 땔감을 이용해 불을 지펴 공간의 온도를 높여주거나 음식을 구워 먹는 용도로 사용되곤 하며, 화덕이나 바비큐 그릴로 활용할 수 있다.https://www.homify.co.kr/ideabooks/25882/분위기-메이커-'파이어핏(Fire-pit)'의-8가지-얼굴


우리집 작은 뒷마당에 놓인 파이어핏의 예쁜 자태, 밤(좌), 낮(우)

제가 '파이어 핏'을 어떤 용도로 쓸지에 관해서는 얼마 전에 발간한 브런치 북, '나에게, 미니멀리즘'의 마지막  글, '10화 새로운 미래 미니멀리즘 프로젝트'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습니다. 


'파이어 핏'은 위 글에서 언급했던 '잊고 싶은 기억 장례식' 혹은 '놓치기 아까웠던 기회 장례식'  장비로도 훌륭하지만, 우리는 이 외에도 '파이어 핏' '덕'을 몇 가지 더 '제대로 톡톡히' 보고 있어요. 



늦게 배운 불장난의 맛


삭막하기 그지없는 아파트 환경에서 태어나 시멘트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자랐던 나. 땅넒은 미국에서 태어난 덕분에 훨씬 더 자연을 많이 접하고 자라긴 했지만 현대화된 부엌 시설, 도시 문명에서 벗어난 적 없는 남편과 아이들. 우리 모두에게 '파이어 핏'을 가지고 불장난하는 시간은 매우 새롭고 신기합니다. 미처 사진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우리는 소시지와 마쉬멜로우, 고구마 같은 것들을 불에 구워 먹기도 했었어요. 소시지는 시커멓게 타는 것을 막을 수 없어 부엌 프라이팬에서만 구워 먹기로 결론. 다행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쉬멜로우는 태우지 않고 적당히 구워 먹는 요령을 터득했습니다. 고구마는 40분 정도를 구워봤는데, 껍데기가 시커멓게 타긴 했으나, 제대로 군고구마 맛이 나서 우리는 매우 신났었습니다. 20분 정도만 구워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엔 나무에 불을 붙여 활활 타게 살려 내는데도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는데, 이젠 종이, 잔가지, 돌과 나무를 적절히 쌓아 배치해서 불을 빨리 지피는 요령도 터득했어요. 예전에 봤던 '삼시 세끼'라는 예능에서 매끼마다 밥해먹으려고 불 피우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현대적 설비가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세끼 해 먹으며 사는 일이 귀찮고 힘들겠다 싶으면서도 뭔가 마음이 만족스러워지는 무언가가 있어서 계속 보게 되던 예능이었습니다. 직접 불 지피기 성공하는 느낌은 더 짜릿하고 뿌듯하고 재미있습니다.

밤에 즐기는 불멍 축제, 불장난의 맛



가족이 모이게 하는 '불멍' 페스티벌


 항상 게임과 유튜브의 세계로 온몸 바쳐 다이빙할 준비가 되어 있는 13살, 10살 남자아이들. 책과 글 속에 펼쳐지는 딴 세상으로 쉽게 빠져드는 엄마, 한 순간도 쉼 없이 돈 벌고 노후 자금 모으고 싶은 아빠. 각자 개인 소유 전자 기기 하나씩 붙들고 씨름하는 모습이 일상인 우리 가족. 새로 산 '파이어 핏'이 이렇게 각자 노는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의 장소에 하나의 마음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여행'이 이런 역할을 해 주었었어요. 특히 멀리 떠나는 여행은 '한 차'에 '한 호텔 방'에 긴 시간 가족을 모아 두고, 서로 대화가 더 많이 오가게 돕고, 이 낯선 곳에 아는 사람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도와주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여행을 자주 다니는 일은 한동안 위험한 일이 되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밤마다 벌어지는 이 '불멍 축제'가 '우리 가족을 모이게 하는 시간'이 되고 있어요. 추운 공기를 이기고 뜨겁게 춤을 추며 살아나는 불 공연을 보는 일, 때론 잠잠히 인생의 모든 고통을 삼키고 내면을 정련 중인 듯한 '옛이야기의 화덕'같은 불 이야기를 듣는 일이 생각보다 따뜻하고 다채롭고 소소한 재미가 있어요.

불멍을 부르는 춤추는 듯 화려한 불꽃 공연



쓰레기 줄이는 '서스테이너블 라이프'에 한 걸음 더,


위 사진들에 나온 우리 집 뒷마당을 자세히 보면 나무로 만든 소품들이 가득한 걸 볼 수 있습니다. 마당을 둘러싼 펜스, 나무문이 달린 창고, 크고 작은 벤치들... 모두 남편이 취미로 만든 것들입니다. 나무를 사다가 이리저리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만드는 취미를 가진 남편 때문에 우리 집엔 '나무 도막 쓰레기'가 많이 나오고, 지금까지는 그것들을 모아 쓰레기봉투에 싸서 버렸어요.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도 좁은 집에 쌓아둘 공간도 활용방법도 없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파이어 핏'이 생긴 이후부터 우리 집에 종이와 나무 쓰레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찢어버려도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남던 개인 정보가 담긴 문서 쓰레기들도 이렇게 깔끔히 태워 없애는 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쓰레기 취급을 받았던 자원들이, 이제 '즐거운 가족 단합의 밤'을 만드는 연료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되어 기분이 한결 더 좋습니다.


남편이 만든 벤치와 펜스



그리운 친구와, 야외 카페 타임


오랜 친구와 잠시라도, 마스크 쓰고라도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선 서로가 잠재적 감염 환자라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심하지 않다가는, 의료 상황 열악한 미국에서, 나 때문에 친구를 땅에 묻을 수도 있고, 친구 때문에 내가 땅에 묻힐 수도 있습니다. 집안으로 가족 아닌 타인을 초대할 수 없는 상황. 집 앞에 서서 이야기하기도 뭔가 문전박대하는 느낌이라 내키지 않습니다. 이 '파이어 핏' 하나를 들여놓고, 남편이 나무 벤치를 만들어 놓자, 우리 집 뒷마당이 나름의 운치가 있는 '야외 카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 안에 있는 가족 누군가가 커피만 타서 밖으로 내주면, 마당에선 따뜻한 불가에서 몸을 녹이며 마스크 쓰고 앉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남편의 절친이 그렇게 몇 번 다녀갔고, 그렇게라도 친구와 만나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심심한 동네 아이들도 잠시 들러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벤치에 앉아 그림 그리거나 나무 쌓기 놀이를 하다 가곤 합니다, 단, 화장실에 가고 싶어 지기 전에 헤어져야 한다는 웃픈 조건. 마당 한 구석에 '퇴비 화장실 (Composting Toilet)*'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퇴비 화장실 (Composting Toilet): 수도관을 연결하여 물로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배설물을 나무 톱밥이나 재, 흙으로 덮어 썩혀 나중에 비료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친환경 화장실. https://www.sunrisespecialty.com/diy-composting-toi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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