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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23. 2020

나에게, 단골 식당

우리 가족의 비밀 아지트

저는 새로운 식당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식당 탐험'도 좋아하지만, 동시에 좋아하는 식당을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식당 주인 및 서빙하는 분들과 얼굴을 익혀, 서로에 대해 반갑고 고마운 감정을 즐기는 '단골 식당 유지하기'도 좋아합니다.


저희 가족이 코로나 상황에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식사하는 단골 식당이 있어요. 최대한 우리 가족만의 조용한 단골 식당으로 오래 누리고 싶은 곳이므로 식당의 위치라거나 이름은 말하지 않을게요. 이곳을 알아채는 분은 조용히 지나가 주시길...


이 식당은 저희 집에서 15분쯤 하이웨이를 타고 올라가서, 15분쯤 좁디좁은 시골 마을 길을 한참 달렸다 싶을 때, 풍경이 탁 트이며 나타나는 농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입니다.


농장 식당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풍경. 왼편 호수 (좌), 오른 편 호수 (우)


식당 입구에 양옆으로 있는 호숫가에 가까이 가보면, 항상 거위 떼 - 지나가는 철새 손님 - 가 우굴 우굴 자리 잡고 진을 치고 있어요. 더 자세히 보면, 그 거위 떼 틈에서 꿋꿋이 자신의 일상을 지키는 세 마리의 오리를 볼 수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세 마리의 오리는 단짝 친구들처럼 늘 함께 다녀요. 어쩌면 엄마와 두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엄마 아빠와 외동아이인지도 모르죠. 서로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언제나 수영도 함께, 산책도 함께, 결코 떨어지지 않는 삼총사입니다. 호수 주변에 가까이 가서 '농장의 대스타' 오리를 만나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합니다. 호수 주변은 오리 똥과 거위 똥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그야말로 '똥밭'이기 때문입니다. 눈부신 스타의 자리에 오르려면 더러운 똥밭을 견디고 지나가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적나라하게 가르쳐 줍니다. 아래 세 장의 귀여운 사진들을 건지기 위해 제 신발은 그 날 으헉... 더 이상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담하고 정겨운 식당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미리 오더를 해야 하는 창구가 있고, 오더를 하고 나면 식당 자리로 안내해 주는 안내인이 항상 입구 안내 데스크를 지키고 있었으나. 코로나 이후부터는 안내인이 없고 그냥 들어가서 원하는 자리를 찾아 앉으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식성인지 잘 아는 수잔 -60대 아주머니 서버-이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해요.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초콜릿 우유를 좋아한다는 것과 남편은 아이스티, 나는 레몬을 띄운 따뜻한 물을 늘 찾는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음료수를 내주고 나서, 그녀는 설탕이 잔뜩 발린 '슈가 비스킷'과 '디너롤' 그리고, '설탕에 조린 과일 (여름엔 복숭아, 겨울엔 사과')과 '코타지 치즈', '애플 버터', '코슬로',... 등의 애피타이저를 내 옵니다. 애피타이저 타임이 끝나면 다음에 메인 메뉴가 등장합니다. 각종 해산물 요리와, 스테이크, 돼지고기, 닭고기 요리를 다 구비하고 있어요. 우리 가족이 주로 시키는 것은 '후라이드 치킨'과 '새우튀김', 그리고 '포터하우스 스테이크'와 '베이비 백립'입니다. 수잔 아주머니는 우리가 시킨 메인 요리와 함께, '옥수수와 그린빈 삶은 것'과, 아직 펄펄 끓는 기름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감자 튀김'을 내 옵니다.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수잔은 가끔 우리 테이블에 들러, 더 먹고 싶은 거 없냐, 더 필요한 거 없냐 물어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지 않고, 뱃속의 공간을 좀 남겨두려고 노력합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아이스크림과 커피' 디저트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밖으로 너르고 푸르게 펼져진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이며 마시는 이 집 '블랙커피'는 그냥 '환상 교향곡' 그 자체입니다. 제게 가장 기대감을 주는 디저트 클라이 막스가 지나면 이제 음식 콘서트는 막을 내립니다.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30% 정도의 조금 과한 팁으로 대신합니다. 항상 일정한 맛을 유지해 주는 단골 식당, 우리 가족의 기호를 속속들이 기억해주는 수잔 아주머니에 대한 저희의 마음, 감사의 '앙코르', 다음의 좋은 만남을 기약하는 '예약 티켓'입니다.  


여기서 풀코스 식사를 하는 느낌은,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갈 때 할머니가 끊임없이 내주시는 산골 내음 물씬한 시골 음식을 먹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이 농장에 오면 미국판 시골 외갓집에 놀러 온 느낌이 듭니다.


이 농장은 큰 땅과 여러 채의 건물들 - 농기구 보관용 창고, 가축을 키우는 헛간 건물, 식당 건물, 농장 주인 가족이 거주하는 본채 건물 -과, 옥수수밭을 포함한 각종 농작물을 생산하는 드넓은 밭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름에 오면, 식당 건물 한편에 금방 수확한 토마토 수박, 옥수수 같은 야채를 내놓고 팔기도 하고, 농사철이 아닐 땐 파이와 각종 베이커리 및 잼 등을 진열해 파는 가판대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농장에서 이런 것들을 잔뜩 사서 집에 갈 땐, 시골 친척집에 갔다가 집에 갈 때 바리바리 싸주시는 것들을 들고 가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한없이 푸근해집니다.


이 식당을 자주 찾는 이유가 시골 할머니 손맛이 느껴지는 맛있는 음식이 한 가지 이유라면, 그에 못지않은 다른 한 가지 이유는 '탁 트인 땅'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식당 뒤로 펼쳐지는  풍경 1
식당 뒤로 펼쳐지는 풍경 2

 그림처럼 펼쳐진 농장 주변을 거닐며 산책을 하노라면, 언덕 위에 부는 바람처럼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다닥다닥한 도시에서 아등바등 지내다가, 탁 트인 땅 위에 서면, 마음도 탁 트이는 게 참 기분이 좋아집니다.


쉿, 혼자만 알고 계세요. 이곳은 저희 가족의 비밀 아지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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