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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05. 2021

마음을 무시하면 병으로 자란다

꼭꼭 씹어 먹고 내 것으로 만들 오늘의 영어 표현 양식 4

Psycosometic


Psycosometic 뜻을 영문 그대로 해석하면 '스트레스나 내적 갈등, 불안증 같은 정신적 요인으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거나 악화되는'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의역하면, '마음이 병이 된'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사람들이 '신경성' -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신체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거나 통증을 호소하는 -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증상들을 설명하는 단어라고 생각된다. 


신경성이라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표현되지 못하고 설명되지 못한 채 억눌린 감정들이 갖가지 병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암이나 자가면역질환이라는 다루기 힘든 병으로까지 신체를 상하게 하기도 한다. Psycosometic 은 전혀 가볍게 넘어갈 단어가 아니다. Psycosometic Diseases, 심인성 질환은 한마디로 말해 마음의 과로 증세다. 몸을 너무 혹사하면 과로사로 사망할 수 있는 것처럼, 마음도 혹사하면 과로사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병이 된다.


 Psycosometic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면서, 내 마음을 지키는 일, 내 감정을 돌보는 일의 중요성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평화로운 아침, 아침이다. 간밤에 아무 일 없는, 아픈 사람도 급한 사람도 없는 그런 아침. 모두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일어나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족을 보는 안도감과 만족감. 고디바 트러플 초콜릿처럼 풍부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이 평안의 맛이, 밤 사이 무슨 일이 자꾸 있었던 어린날 뒤숭숭한 아침들이 숭숭 뚫어놓은 가슴속 빈 구멍을 따뜻하게 채운다.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 이 평화로운 아침을 나는 두 손 들어 경건히 받아 들고 끝없이 감상하고 감탄한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공기의 온도는 싸늘하다. 차를 내린다. 따뜻한 녹차. 지리산 어린잎 특유의 아릿한 맛이 스며든 마음이 지리산 산골 자락에 가 닿는다. 그곳의 여름 아침도 참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잠에서 깨면, 어김없이 선명해지는 계곡 물소리, 검은 오골계들이 자유롭게 산골 자락을 헤치고 뛰어다니는 소리, 어른들이 가축을 포함한 모든 식솔들의 아침밥을 챙기는 소리를 한참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내 눈앞엔 몇십 가지 나물 반찬으로 빼곡한 푸른 신비 밥상 파노라마가 펼쳐지곤 했다. 그곳에서의 여름 휴가는 병든 마음 치유제 그 자체였다. 그곳의 공기도 물도 음식도,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일찍 잠이 드는 산골 사람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도 모두, 도시에서 찌들고 병든 우리에게 약이라는 것을 어린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에 살았던 우리 가족에겐 평화로운 아침이 귀했다. 평화로운 아침을 깼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보다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봉 방해꾼을 기억해 낸다. 뭐니 뭐니 해도 술이었다. 무난한 도시인의 삶을 파괴하는 데는 술이 가장 힘센 능력자였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시간을 어기고 집에 늦게 들어온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언제 집에 들어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리는 자체가 기다리는 가족에겐 불안감 폭탄이다. 술 취한 채로 운전을 할까 봐. 남늦게 돌아다니는 위험한 사람들을 만나 몹쓸 일을 당할까 봐. 비슷하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끼리 시비가 붙어 경찰서에 잡혀가는 일이 생길까 봐.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내팽개치고 빠져들까 봐. 별일 없이 집에 무사히 도착한다 해도, 평소에 표현하지 않고 억눌렀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술김에 몰아 폭력까지 더해 표현할까 봐.


우리 가족 모두는 술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에 무리가 온다. 술 마시는 사람들 옆에만 있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술을 마시면 온몸 구석구석 온 신경이 날을 세워 죽을 듯이 몸이 아파온다. 


우리는 결코 술자리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술 좋아한다는 사람들과는 상대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술, 타인에게 술을 강권하는 사람들, 모두가 술 한잔 하며 친해지자는 술 문화야 말로 나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국 밖, 타지로 밀어낸 주범인지도 모른다. 술 마시는 사람이 주변에 없는 곳이어야 심신이 푹 안심하고 평화를 누릴 수 있었으니까. 술과 함께 사느니,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외롭게 사는 걸 선택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이겠지만, 일단 살고 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다.


나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술에 대한, 절제 없이 술 마시는 가족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증을 원인으로 하는 심한 psycosometic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엄마가 가장 심하셨다. 감정을 꾹 참는 놀랍도록 뛰어난 사람인만큼, 몸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심했다. 엄마의 psycosometic 증상은 갖가지였다. 소화불량, 만성 위염, 위궤양, 하혈, 빈뇨, 협심증, 피부 발진, 며칠간 이어지는 과민성 대장증후군, 탈모,...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하면 몸으로 바로 이어졌다. 엄마가 아플 때만 조금 착해지고 말을 듣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몸이 그렇게 난동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몸에 미치는 영향, 몸이 다시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밀접하고 복잡한지. 한 번 들었던 고대 어느 지혜로운 왕의 말이 평생 잊히지 않는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도 마음을 돌아본다. 마음에 대해 생각을 하고 마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다. 내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내 마음과 함께 한다. 내 마음을 부끄러워하거나 가면을 덮어 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자란 대로 환한 빛 가운데 내놓고 말린다. 있는 그대로의 숭숭 뚫린 내면의 구멍마다, 따뜻한 안도감 만족감이 가득 파고들어 채워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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