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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하나 엄마에서, 둘도 아닌 삼 남매 엄마가 되기까지

챕터 올라

by 메론

어쩌다 애국자

“5주 차 다태아네요. 축하해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말했다. 분명 모국어인데, 무슨 뜻인지 한참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태아?' '다태아??' 의사의 눈을 멀뚱멀뚱 마주 보다가 진료실을 나왔다.


밖에 앉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과거의 나는 열정적이고 추진력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 내가 사랑한 그 남자는 세상일을 다 한다) 통화가 되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를 남겨놓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으니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쌍둥이라니.'

쌍둥이란 응당 몇 곱절로 축하받을 일이건만 내가? 서른아홉, 내가 쌍둥이를 임신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고 이유도 모른 채 (지금 생각해 보면 첫째와의 지독히도 외로운 육아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길바닥에서 눈물이 펑펑 났다.



육아에 지쳐 미워지는 건 시어머니 아들

결혼 후 8년 만에 찾아온 첫째를 꽤나 귀하게 키웠다. 아니, 지나고 보니 ‘유난하게’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유선염과 싸우며 완모로 아이와 지새운 밤들, 아이가 울면 모유가 부족한 건 아닌지 아픈 건 아닌지. 또 매일 삶아서 햇빛 아래 널어 말리던 천기저귀는 어떤가! 이유식도 직접 다지고 다져 무염 저염...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는 21세기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자발적인 선택으로 힘들 때마다 ‘첫 아이는 다 그렇다더라’는 말로 위안했지만 나의 첫 육아는 내 마음에만 좋은 유난, 아니 고난이었다.


세 돌까지 통잠이라고는 잔 적이 없고, 밤마다 눈물 훔치며 유축기와 육아서를 끼고 살던 나날들.

아이를 위한다며 육아에 힘을 쏟을수록, 애들은 알아서 큰다는 남편과의 다툼은 늘어갔고, 힘들어 지쳐갈수록 남몰래 ‘둘째는 절대 없다’ '모두 그만두고 혼자 아이 키울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우리의 계획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챕터를 써내려 간다.



'같이'하는 공동육아의 가치

가정보육 48개월 차, 첫째의 어린이집 또한 유난스럽게 알아보다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알게 되었다.


매일의 힘든 실외 활동으로 계절을 몸으로 느끼고 아이들 각자의 흥미와 속도로 놀이를 통한 교육이라니! 게다가 아이가 건강하게 실컷 놀았으니 잘 먹고 잘 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과거 교육기관에 몸 담았던 내게 말도 안 되게 이상적인 기관이었고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입소를 결정했다. (당시 교육이사에게 유선으로 입소 가능 통지를 받고 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우리 아이가 서울대에 합격한 줄 알았다고 한다.)


코로나로 꼬박 4년간 혼자 아이를 키우던 시간에서 ‘함께, 우리 아이를 키우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문을 두드리며 아이만의 적응이 아닌 가족 모두가 새로운 육아의 세계로 젖어드는 시간으로, 실로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내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를 안아주고 서로의 고민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를 키우는 일의 풍경이 달라졌다.

‘혼자서도 잘해야 해’에서 ‘같이 하면 괜찮아질 거야’로.

그렇게 공동육아에 젖어들며 나는 육아에 조금 여유로워졌다.


내 아이는 이웃 엄마와 놀이터에 가고 내 곁에는 다른 집 아이가 앉아 모래놀이를 하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남편에게도 동네 육아 친구들이 생겼고 바쁜 와중에도 육아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차츰 변해갔다. 함께 성장하는 우리 가족을 보며 ‘이곳에서라면 둘째를 낳아야겠어!' 생각했다.


뜻밖의 쌍둥이 소식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일상으로 돌아온 후 임신 기간 내내 이상하게도 두렵지만은 않았다. 혼자 캄캄했던 첫 아이 키우기를 지나 공동육아의 온기를 온 마음으로 받아서일까, 쌍둥이라는 불안함 속에서도 어딘가 단단한 마음이 함께했다. 또다시 밤을 새우고, 이유식을 만들며 울지도 모르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이 육아를 기꺼이 함께해 주는 친구들이 있고, 우리 아이들을 함께 안아온 내가 있다.


나는 이제 '세 아이 엄마’라는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까만 눈동자 속에 나를 가득 담은 그들과의 전쟁이 여전히 낯설지만 이번에는 그 문을 조금 더 담담하게 열 수 있을 것 같다.

공동육아 덕분에! 따뜻한 마음이 모인 덩더쿵 덕분에!



덧붙임.

자동차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공동육아 덕분에 아이가 셋이 된 김에 3열 5인 이상 탑승 차량을 고르는 새로운 재미에 흠뻑 젖어있다.


by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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