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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도전자야!

챕터 라라

by 메론

메론: 라라와 이사진 일을 하면서 느낀 건, 새로운 도전에 대해 두려움이나 저항감이 먼저 나타나는 것 같아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마치 방어기제처럼요. 예를 들어 캘린더 사용법을 알려드렸을 때도 "나 이런 거 약해요"라는 말부터 시작하셨죠. 그 배경이 궁금해요.


라라: 메론이 보기에도 그런가요? (웃음) 메론이 '나는 보수다'라는 제목을 붙여주셨을 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왜 그렇게 느끼셨을까. 일단 저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굳이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일에는 방어기제가 나오는 것 같아요. 지금에 만족해서 "굳이 왜 변화를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또, 예전부터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게 느리고 버거웠어요. 자격증을 따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여전히 독수리 타법을 쓰고 있거든요. 빠르게 변화하는 속도를 제가 따라잡기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인가 봐요. 덩더쿵일에 있어서 방어기제가 나오는 건, 지금의 덩더쿵에 만족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이사진이 되기 전 2년 동안 정말 모든 게 다 좋았거든요.


부모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셨고, 새로운 도전보다는 예측 가능한 익숙한 것들을 선호하셨죠. 식당도 가던 곳만 가고요. 그래서 저도 혼자 새로운 곳을 잘 못 가요. 도전 정신이 부족한 거죠.


메론: 듣다 보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신 것 같아요. 새로운 음식점에 갔다가 맛이 없으면 돈이 아깝고, 그런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요.


라라: 맞아요. 그런 것도 있어요.


레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후천적인 건지는 모르겠어요. 라라를 아기 때부터 봤는데, 부모님 성향을 보면... 확실히 "이건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 하는 게 없는 편이죠. 그게 두려워서인지, 원래 그렇게 살아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좀 특징이에요.


라라: 맞아요. 그런 제 모습이 지후에게 영향을 줄까 봐 걱정돼요. 그래서 캠핑도 도전해 본 거예요. 제 성향이나 생활 패턴과는 전혀 맞지 않지만, 레니가 지후랑 너무 좋았다고 하니 용기를 냈죠. 막상 가보니 "해봐도 좋구나,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구나" 느꼈어요.


지금 제 인생에서 가장 과감하게 도전해 보고 싶은 건 사실 진로예요. 예전에는 부모님 그늘 아래서 안정적인 직업을 찾으려 했지만, 이제는 레니와 지후 옆에서 진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실패하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분야가 뭘까 계속 찾고 있는 게 지금 제 목표예요.


메론: 회사 생활 오래 하면서 구인도 많이 해봤는데, 경험상 60점만 돼도 지원해 봐야 해요. 80~90점짜리 완벽한 직장은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나머지는 다 실무거든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 현타가 올 수 있어요. 기대치를 낮추는 게 중요하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고 싶어 설레일 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라라: 메론은 18년 동안 월요일에 가기 싫다는 생각 없이 일하셨다는데, 육아 때문에 그만두셨잖아요. 아빠들로 치면 정년퇴직 같은 느낌일 텐데, 괜찮으셨어요?


메론: 우선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있던 수입 오디오 분야가 극소수 부자들을 위한 시장으로 서서히 변하면서 온라인 대량 유통에 익숙한 저와는 좀 안 맞게 되었죠.


중요한 건 일에서 보람을 느껴야 한다는 거예요. 제 전문 지식이 남을 돕는다는 느낌. 저를 찾는 사람들은 도움을 원하고, 저는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이 있었죠. 그래서 상당 기간 보람을 갖고 일했어요.


라라에게 재취업 조언을 드린다면 일단 집 가깝고 적당한 곳에서 1~2년 버티면 경력직으로 이직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쇼핑몰 MD를 하고 싶다면 처음에는 주문 수집, 택배 송장 출력 같은 일부터 해야 합니다. 그게 쌓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돼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전 단계를 몇 년은 버텨야 해요.


라라: 그 한 번의 성취를 위해서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거군요.


메론: 맞아요. 지금 당장 이사진 일도 하기 싫을 수 있어요. 저도 ‘분당세대공감 축제’ 나가는 거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고 판단하죠. 가서 한두 명이라도 실제 입소할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으니까요. 김연아 선수에게 연습할 때 무슨 생각하냐고 물으면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하잖아요. 그게 맞더라고요.


라라: 메론이 느끼기엔 제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처럼 보였나요? 아니면 변화가 꺼려져서 덩더쿵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피하는 것처럼 보였나요?


메론: 저는 제 관점에서 봐요. "나 이거 하기 싫은데 남들도 하기 싫겠지." 일단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라라에게서 어떤 변화에 대한 저항감 같은 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데, 아예 시도 자체를 안 하려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죠. 지금 이대로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크고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이 보여요.


레니: 최측근인 제가 봤을 땐,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어요. 부모님 말씀에 거역한다든지,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다른 길을 선택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죠. 저랑 결혼해서 울산에서 분당으로 올라온 게 이 사람 인생 최대의 결정이었을 거예요. 그만큼 굴곡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주변의 변화나 제안이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라라: 맞아요. 제 삶 자체가 큰 변화나 도전 없이 쭉 온 것 같아요. 제 인생의 가장 큰 도전과 역경이 가정 보육이었어요. (웃음)


레니: 저희 둘만 있었으면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았을 텐데, 지후가 있다 보니까 "엄마도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아요. 지후가 엄마처럼 안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저희가 지후를 덩더쿵에 보내는 가장 큰 이유도 그거예요.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생각대로 살라고. 여긴 적어도 그런 곳이니까요.


라라: 딸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딸은 엄마 모습을 닮는다고 하잖아요. 저희 엄마도 전업주부셨는데, 제 모습이 지후에게 대물림될까 봐 엄마도 도전하고, 할 수 있든 없든 해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메론: 듣다 보니 라라는 현재 자기 모습에 불만이 좀 있으신 거네요. "이게 내 단점이지만 이대로 괜찮아" 이게 아니라.


라라: 여자로서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엄마로서는 아니에요. 레니의 부인으로만 살았다면 지금 상태에 굉장히 만족했을 거예요. 남한테 맞춰야 하는 상황도 줄고, 가장 친한 친구인 남편 하고만 잘 지내면 되니까요. 그런데 가정 보육을 하고 지후를 덩더쿵에 보내면서 생각이 자라났어요. 아이에게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게 진짜 교육인데, 그걸 위해서는 내가 움직이고 도전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걸요.


이번 이사회 때 조직 진단 같은 것도 처음엔 하고 싶지 않아 하는 태도였지만, 결국 참여하게 된 것도 저에겐 한 걸음 나아간 거라고 생각해요. 덩더쿵에서 이사진 일 하면서 안 해본 걸 조금씩 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아직은 초반이라 내년에 제가 얼마나 바뀌어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은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메론: 저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이사진 일을 2년 차 하면서 많이 변했다고 느껴요. 변화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이사진 일을 적극적으로 많이 하는 게 답이지 않을까요? 교육이사로서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그 분야에 계속 몰입하고 시간을 써야 해요. 스위치를 켜놓은 상태로 사는 거죠.


레니: 라라한테는 진짜 어려운 일이에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 집이 완전 박살 날 수도 있어요. (웃음)


메론: 몰입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계속 들여다보면 아이디어가 나와요. 저도 이사진일 하면서 예전에 명맥이 끊겼거나 안 했던 일들을 새로 시작했는데, 누구한테 물어봐서 한 게 아니라 계속 생각하니까 된 거예요. 스위치가 켜져 있으니 작은 아이디어도 놓치지 않고 캐치하게 되죠.


라라: 아이를 키우며 경력 단절이 길어지니까 제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지고 믿음도 부족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보수적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메론: 그건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이사진 일을 하면서 사소한 성취들을 누적시키는 거죠. 매거진 덩더쿵 2호에 도전해 보세요. 결과물이 딱 나오면 그게 자신감의 근거가 되잖아요. 저도 매거진 시작한 게 그런 일환도 있어요. 제가 손을 댔는데 흐지부지되는 건 용납이 안돼요. 18년 직장 경험으로 이거 하나 못 해내면 스스로 창피하잖아요.


라라: 멋지네요. 메론님은 정말 몰두를 잘하시는 것 같아요. 한곳에 집중하는 능력이요.


메론: 후천적인 거예요. 어렸을 때 주의가 산만했고, 지금도 ADHD 성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즉각 메모하고, to do 리스트에 바로 올려요. 안 그러면 잊어버리거나 흐지부지되거든요. 해야 할 일을 리스트업 하고 하나씩 해치우는 걸 반복하는 거예요. 제가 산만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단 손대면 마무리될 때까지 다른 길로 안 새려고 노력해요.


라라: 몰두하려고 엄청 애쓰시는 거네요. 저도 조금씩 해볼게요.


메론: 운전할 때 서 있는 앞차를 박지는 않으시잖아요. 저는 박은 적도 있어요. (웃음) 그 정도로 산만해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같은 부류일 수 있어요. ADHD 성향이 있어서 산만한데, 저는 그걸 후천적인 노력, 스스로 정한 규칙으로 보완한 거죠. 라라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어요.


라라: 네, 조금씩 조금씩 해볼게요! 저는 보수적으로 살아왔지만, 제 인생의 진짜 새로운 도전인 육아를 받아들이면서 덩더쿵이라는 또 다른 도전, 이사진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잃지 않고, 앞으로도 몰두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덩더쿵에 들어온 건 제 육아 인생에 정말 큰 행운이에요. 일반 유치원에 갔다면 그냥 안주하는 엄마로 살았을 텐데, 뭐라도 하려는 마음이 생긴 건 제가 엄마가 됐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울산에 살았다면... 아마 그대로 안주하며 살았을 거예요. 친정, 시댁, 친구들 다 가깝고, 대기업 다니는 남편에 전업주부인 삶이 편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삶에서 깨우치고 있어요.


메론: 이 인터뷰를 보고 라라와 비슷한 분들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으면 좋겠네요.


라라: 맞아요. 저 같은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웃음)



인터뷰어: 메론

인터뷰이: 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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