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방 Jun 25. 2023

#8. 선택. 그저 선택일 뿐인 선택.

<상담실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들>

아이와 오랜만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브랜드의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여러 가지를 골라야 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의 맛도 고르고, 컵과 콘 중 어디에 먹을지도 골라야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콘 주변에 붙은 토핑의 종류가 무려 다섯 가지. 처음 먹어보는 맛, 익숙하지 않은 이름에 저 또한 한참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겨우 끝났나 싶었는데 그렇게 콘 위에 올려진 아이스크림에 올라갈 마지막 토핑을 골라야 했습니다.


비교적 빠르게 선택을 해 주문까지 완료한 저와 달리 아이는 꽤 초조한 표정으로 직원의 질문에도 답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평소 주문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편이 아닌 아이가 뒤에 길게 늘어선 줄을 연신 힐끗거리면서도 쉽게 주문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습니다. 겨우 주문을 마치고 받아 든 아이스크림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음미하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습니다.


"아까 있잖아. 아이스크림 종류가 많아서 결정하는데 좀 쉽지가 않았어?"


"응"


"왜?"


"왜냐면 내가 여기 다시는 못 올 수도 있잖아? 그래서"


"다신 이 아이스크림을 못 먹을 수도 있으니, 제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할 것 같았구나? (그치)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근데 있잖아. 아이스크림은 그냥 아이스크림이야. 혹시 니가 이번에 맛없는 조합의 아이스크림을 선택했어도, 그냥 그걸 잘 기억하고, 다음에 다른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선택을 해보면 돼. 너에겐 기회가 많아. 알았지?"


인생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에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오겠지만, 저는 단연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작게는 오늘 무엇을 입고 출근할까,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생활과 밀접한 선택이고 좀 더 크게는 나를 자꾸 불안하게 만드는 그 친구와 계속 만남을 유지할 것인가와 같은 선택도 있습니다. 자주 오진 않지만 진학이나 진로, 직장과 같은 꽤 커 보이는 선택들도 있구요. 선택은 매 순간 날아오는 탁구공 같고 우린 그 탁구공을 쳐내지 않고선 넘어갈 재간이 없는, 그러니까 의지와 상관없이 공을 쳐내는 탁구 선수 같은 존재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상담에 오는 수많은 분들이 마음에 품고 오는 질문입니다. 그럴 때 저는 되묻곤 합니다. '좋은' 선택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어떤 사람에게 '좋은' 선택은 많은 경우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격언을 절대적 진리로 품은 사람처럼 마치 매번의 선택을 낭떠러지에 선 마음으로 절박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이 한 번의 선택이 내 모든 것을 결정할 테니 나는 매 순간 틀려서는 안 돼. 사실, 인생의 큰 그림에서 볼 때 절대적으로 맞고 틀린 선택도 없습니다. 그저 완주에만 의미가 있는 우리의 인생에 오로지 직선코스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는 단 하나의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주저앉아 아무 선택도 하지 않기를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지나가는 누군가의 가벼운 말을 덥석 붙잡고, 눈 질끈 감고 그쪽을 선택해 버릴지도 모르구요.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선택은 누군가는 실망시키지 않는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 내게 중요한 대상이겠죠.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중요하다고 믿고 싶은 누군가 일 것입니다. 우리는 왜 누군가가 중요하다고 믿고 '싶을'까요. 사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은 오직 나 하나뿐인데 말이죠. 때로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선택하고 이끌어나간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고, 그래서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너는 이렇게 하렴, 길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곤 합니다. 사실은 이 또한 절대 틀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선택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사실 그에게 허상뿐인 통제권을 부여해 나 스스로에게 실망할 기회에서 도망치려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했어. 그런데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그건 당신이 틀린 거지, 내가 틀린 게 아니야.


이 두 가지 의미의 공통점은 결국, 스스로에게 틀릴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든 마음은 나를 너무 사랑하는 마음 혹은 나를 너무 믿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이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틀려봐야, 내가 어디까지 존재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틀려봐야, 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틀려봐야, 내가 이것을 진짜 원하는지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지 그 진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택은 그저 선택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택은 종착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하는 하나의 문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땐 내 인생의 길에 있는 수많은 문 중 하나를 연 것뿐입니다. 문을 열기 전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듣고 신중히 고민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행동들이 문을 여는 것 그 자체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선택이란, 틀리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닌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한 것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 문을 열 용기가 조금 더 생기지 않을까요.



아이스크림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 아이스크림에는 크게 세 가지 옵션이 존재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의 맛, 콘의 종류, 토핑의 종류. 선택의 결과는, 저는 아이스크림 맛과 토핑 종류에는 성공했으나 콘의 선택에서 실패했습니다. 우와. 새콤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저인데 이 콘은 제게 '시큼 달큼'한 맛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조차 방해할 정도로 미각을 얼얼하게 하는 맛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콘을 선택한 저희 아이는 놀랍게도(!) 그 콘이 맛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먹지 못한 저의 아이스크림 콘을 아이가 가져가서 먹기까지 했죠.


아이스크림치곤 꽤나 비싸서 본전 생각이 나는 맛이었지만 제 선택은 실패가 아닙니다. 제 미각과 취향에 귀중한 DB가 쌓인 거죠. 이 DB를 바탕으로 앞으로 저는 저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음식을 먹을 기회가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다음 아이스크림을 시도할 용기가 조금 더 생긴 거겠죠?

이전 08화 #7. 승인.받고 싶은 당연한 마음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