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山菊 피는 밤 / 권분자

by 권작가
산국 피는 밤.jpg


산국<山菊>피는 밤


권분자



일어나는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의 어깨를 짚어서

뜨거움에 닿은 산국은 부풀어 오른다


국화얼굴 음각된 무쇠의 틀 안에

몇 번의 기름 솔이 스쳐 지나고

반쯤 감긴 눈으로 연약한 반죽에 닳은 손톱은

위태로운 밀밭의 향기를 긁는다


허울 좋은 사랑은 그녀에게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건지

수평을 만나기 위해 달려 나온 골목 입구

몸 돌리던 한 사람이 빠져나오면

금새 또 누가 걸어 나오리란 것을

골목 입구에 오래 머문 그녀는 안다


틀에 부어넣는 반죽의 양 만큼

노릇노릇 구워지는 풀빵이

산골짜기 짐승 이빨이거나 발톱에

상처를 내었을 꽃으로 기억되는 순간

허기를 데려온 사람은

지폐를 건네고 종이봉지 입구를 말아 쥐겠지


빵이 구워지는 순간이 그러하듯

한 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건너가는

산소호흡기 눌러쓴 치매 끝 시어머니도

그녀에겐 삶의 어떤 의미가 되지 못해

무쇠의 빵틀 속에서 퉁퉁 부어오른다


삐딱해진 가격표 걸어 놓고

국화모양 풀빵을 굽는 그녀는

더 이상 풀빵 장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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