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한 다발 꽃 사 들고 찾아온 옛 친구는
어디서 뭐하고 지낼까
1980년대의 슬픔이 천박하다고 통쾌하게 웃어젖히던 친구는
지워버리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내보이는 솔직함이 돋보이던 친구는
내 소설에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기 좋은 전략
네가 기억하는 그대로를 나도 기억할까?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를 너도 기억하니?
우린 어쩜 넌지시 상처를 떠보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때를 깔깔거리며 먼지탑이 된 꽃의 다발을 허물고 있었다
종잡을 수 없는 모순투성이 낡은 티셔츠는 친근하게
알록달록 얼룩은 촌스러운 색깔을 주저하지 않는다면서
1980년대 속의 너는 나를 베끼고 나는 너를 베껴 쓴다
밝고 강하고 센 꽃다발 속 꽃이라 부르는
그것들은 이미 바싹 말라가면서
중력 잃은 2024년의 오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