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긴 사유
베아링에 기름 바르던 재숙이 엄마의 얼룩진 손이
꽃 하얗게 핀 파밭에 나비로 날고 있다.
여기저기 빚 독촉에 애 끓이던 그녀의 나날에는
내가 그녀에게 빌려주고 받지 못한 금액이 가계부의 작은 칸을 뭉개고 있었다.
어느날 대궁 굵은 숫파와 바람나서
내 돈 떼어먹고 종적 감춘 재숙이 엄마 탓에
나는 매콤 씁쓸했다.
속 비워진 대궁이가 피우는 꽃들이란 다 저렇게 희고 아린 맛일까?
빗줄기 거세게 지나간 밭고랑을 내다보며 앉은 창가에서
나는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 보다도 더 궁금했던 건 그녀의 안부였다.
찐득한 눈물방울 매달고 몸 꺽여 후줄근한 대파가 되어 있지나 않은지
내가 그녀의 근황을 추측하는 동안,
파의 상처 위로 날아간 나비는 머리가 꼬불꼬불 했다.
파마머리 잘 어울리던 재숙이 엄마가 모로 누워 잠을 청하는 파밭,
나를 두고 떠난 그녀의 마음이 물안개인 듯
칠월 정수리를 적시는 흰꽃의 향기 속으로
벌도
나도
지워진 가계부 빈칸도
기름때 얼룩진 하늘도
베아링 구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