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톡, 씨방 터트리는 담장의 박주가리는 알약을 복용 중이다.
바람 한 모금으로 삼키는 알약의 혀끝에서 쓴맛이 피어난다.
목을 타고 내려가서 위장을 훑는 내 몸 안에는
작은 씨앗이 풀리듯 퍼져나가
오늘도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진다.
흩어질 준비를 하는 몸속 어딘가에는 담장의 그림자가 자라는지 서늘하다.
풀잎의 기억이 위장에 스며들어 잠 못 이루는 밤,
조금씩 담장 쪽으로 기울어지던 나는 맥박 뛰는 풀뿌리를 손으로 더듬는다.
슬픔의 피로와 아직 다 마르지 못한 생의 조각들로 버티는 가을,
그리고 다가올 겨울을 위해 조금씩 덜어내는 법을 배우며
바람에 몸을 맡기는 내가 매일 삼키는 알약에는
여전히 계절이 숨 쉬고 있다.
남은 생이 잠들어 있는 피로의 끝자락이 내 안에서 천천히 녹아들고,
계절은 내 밖에서 빠르게 식어간다.
천천히 마르고 있는 나를 위해
입안으로 털어 넣는 담장의 알약.